
제70회 전국종별 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황지정보산업고등학교
전국대회 6연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황지정보산업고(이하 황지정산고)의 연승 행진이 올해까지 무섭게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하락세를 걷던 황지정산고는 20년 만에 돌아온 이춘삼 감독의 체계적인 지도 아래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황지정산고는 1974년 창단 후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황지여상 시 절까지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핸드볼 명문 학교로 명성을 날 렸고 한국여자핸드볼을 이끌고 있는 전, 현직 국가대표를 배출 해낸 여자핸드볼의‘산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는 권근혜(부 산시설관리공단), 이미경, 김진이(이상 대구시청), 원선필(인천 시청) 등이 황지정산고 출신으로 실업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황지정산고는 배출해낸 선수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려 과거부터 여고부 강호로 분류됐다. 그러나 침체기도 있었다. 지난해 3월, 이춘삼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황지정산고는 전국대회에서 인천비즈니스고의 벽에 막혀 눈물을 흘릴 때가 많았다.
그렇게 칼을 갈던 황지정산고가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지정산고는 명문 팀의 자존심을 되살려줄 적임자로 이춘삼 감독을 택했다. 이 감독이 돌아온 이후 전국대회 6연패. 다시 돌아온 이춘삼 감독은 어떻게 황지정산고를 명문으로 되돌릴 수 있었을까. 이춘삼 감독은 황지 정산고가 황지여상이던 때 팀을 지도했었다. 황지여중과 황지여상에서 13년을 보낸 이 감독은 1995년 팀을 떠나 20년 만에 다시 친정팀이라 말할 수 있는 정든 곳으로 돌아왔다. 파릇파릇한 총각이던 젊은 지도자는 이제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베테랑 지도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어린 제자들과 핸드볼에 대한 열정만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다. 20년 만에 돌아온 황지정산고, 이 감독도 감회가 새로웠다.
20년 전과는 훈련환경도, 선수들의 성향도 달랐다. 이 감독은 흐름에 맞게 지도방법을 바꿨다. 그리고 모래알 같았던 선수들을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 때 선수들이 기량은 출중했다. 그러나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다보니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이 너무 자유분방해서 조직력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 이춘삼 감독이 다시 만난 황지정산고의 모습이었다. 이 감독은 황지정산고를 체계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손녀뻘 쯤 되는 선수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진심을 보여줬다. 그 방법이 재미있었다. “선수들에게 이기는 경기를 하자고 강조하고 싶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래서 노래를 불렀다. ‘포기하지 마’라는 노래였다. 아이 들도 그 뜻을 알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강원도핸드볼협회 상임이사이자 중고등연맹 이사 등 근엄할 수 있는 직책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마음을 터놓은 덕분 인지 이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제12회 태백산기 전국종합핸드볼대회 여고부 결승전에서 황지정산고의 김보은이 슛을 시도하고 있다
인성교육과 꾸준한 지원의 힘
빠른 핸드볼을 추구하는 이 감독은 기초체력 훈련부터 시작해 개 인기량을 끌어 올렸다. 신장이 좋은 황지정산고 선수들이 빨라지 자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이춘삼 감독이 개인기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인성이다. 황지정 산고가 명문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이 감독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단어가 인성 그리고 예절이었다.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성적만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우승을 위 한, 성적을 내기 위한 혹독한 훈련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인성교육을 위해 한 달에 1~2번씩 교실에서 선수들을 위한 인성교육도 직접 했다. 봉사활 동과 같이 선수들의 인성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체험과 경험을 선 사하고 싶지만 워낙 업무가 많아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 감독이었다. 이 감독의 노력과 더불어 학교와 태백시의 꾸준한 후원도 힘이 됐다. 태백시는 유명한 핸드볼의 메카다. 핸드볼 대회 중 유일하게 시의 이름을 딴 대회가 열리는 곳이 태백이다. 태백시는 초, 중, 고 핸드볼부에 매번 훈련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운동 환경도 다른 도시에 비해 잘 갖춰 져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시, 도의 아마추어 팀들은 물론이고 실업팀들까지 전지훈련을 위해 태백을 찾고 있다. 이는 황지정산고 만 아니라 태백시에 있는 아마추어 핸드볼 팀의 기량발전에 도움이 됐다.
황지라는 이름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핸드볼 부가 연계해 훈련을 한다는 점도 황지정산고의 강점이다. 선수수 급이 쉽지 않아 선수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매번 걸출한 선수들이 배출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황지정산고가 다시 예전의 명성을 찾아가자 드래프트를 앞둔 3학년 선수들에대한 관심도 높아졌 다. 한 매체에서는‘황지정산고 핸드볼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국가대표급 실력을 발휘, 선수 1명당 몸값 1억원 돌파 시대를 예 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최근 열린 제12 회 태백산기 전국종합핸드볼대회에서도 황지정산고의 경기는 높 은 관심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춘삼 감독은 마음을 놓 을 수 없었다. 이 감독은 3학년 선수 4명의 프로필이 담긴 팜플릿을 제작해 실업팀에 우편으로 보냈다. 주변에서는 황지정산고 선수들의 실업 무대 진출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지난해 아픔을 겪은 이 감독은 친딸 같은 선수들을 위해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 고 있다. 이 감독은“지난해 3학년 선수 한 명이 정말 운동을 하고 싶어 했는데 결국 실업에 가지 못 했다. 제자들에게 그런 아픔을 또 느끼게 해주고 싶지 않아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라고 설명 했다. 이어“선수들 모두 누군가의 귀한 딸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딸이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이다보니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선수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흐뭇한 표 정을 지어보였다. 생각만 해도 좋은 듯 했다. 이제 정년퇴임까지 6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이 감독은 황지정산고에서 지도자로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꽃돼지’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많이 꾸밀 나이인 데도 웨이트 훈련을 열심히 하고, 어깨가 넓어지는 훈련도 거뜬히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예쁘다. (선수들이) 통통하니까 애칭으로 그렇게 부른다”고 황지정산고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다시 만난 이춘삼 감독과 황지정산고, 찰떡궁합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다. 이 감독과 황지정산고의 찰떡궁합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란다.
[대한핸드볼협회 윤초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