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카타르세계남자선수권대회 당시 이석(왼쪽)-구본옥(오른쪽) 심판
지금 나는 리우올림픽 남자핸드볼 아시아지역예선 참가를 위해 카타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라운지에 있다. 늦은 시간, 창밖의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지나왔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는 기쁨도, 슬픔도, 안도도, 후회도 그리고 환희와 좌절도 있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대한민국-카타르의 4강전에서 쿠웨이트 심판들의 편파판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분노할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핸드볼을 위해 무작정 국제심판이 되겠다며 2007년 국내심판 자격증 취득을 시작으로 심판생활에 뛰어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의욕과 순수한 열정의 끝이 어디인지 감히 알 수 없었다.
국제심판, 급행열차를 타다
2012년 2월, 국제심판이 되었다. 2011년 2월 대륙심판 자격증 취득 후 정확히 1년만의 일이었다. 그 후, 다양한 국제대회에 초청받아 휘슬을 불었다.

2013년 헝가리세계남자청소년선수권대회 당시 이석 심판
2012년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몬테네그로), 2013년 세계남자청소년선수권대회(헝가리), 2013년 세계여자선수권대회(세르비아), 2014년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크로아티아), 2014년 슈퍼글로브(카타르), 2015년 세계남자선수권대회(카타르),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까지...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각종 아시아대회를 제외하더라도 4년 간 7개의 국제핸드볼연맹(IHF) 주관 국제대회를 소화하였다. 이는 심판으로선 급행열차를 탄 거나 다름없었고, 그렇게 구본옥 심판과 나는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IHF는 심판의 역량이나 수준에 따라 대회 배정을 달리한다. 즉, 새롭게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신진심판을 청소년선수권대회에 배정함으로써 경험을 쌓게 하는 동시에 그들을 평가하며,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했을 경우 주니어대회, 시니어대회로 등급을 올리며 기회와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끝은 모든 스포츠의 꽃, 올림픽이다. 따라서 국제심판이라 하더라도 올림픽/시니어대회에 도달하지 못하고, 청소년대회/주니어대회에서 심판의 경력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슈퍼글로브에서 경기를 앞둔 구본옥(왼쪽)-이석(오른쪽) 심판
이러한 상황에서 만4년 만에 2번의 시니어대회와 심판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슈퍼글로브 대회에 초청받아 휘슬을 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직도 30대 초반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내가 탄 급행열차의 최종 목적지는 올림픽 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4년여의 시간 동안 다양한 국제대회를 경험하면서 수많은 감정들과 대면했다. 비유럽출신의 국제심판으로서 2번의 청소년대회에서 4강전 경기에 배정받아 휘슬을 불었을 땐 어리둥절하면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5 남자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의 우상과도 같았던 슬로베니아 심판들과 동료로서 함께 했을 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5년 카타르세계남자선수권대회 당시 이석 심판
국내에서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연속으로 결승전에 배정되어 경기를 운영했던 기억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앞으로 심판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던 건 아니었다. 경기 후,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팀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불만족스러운 시선을 느낄 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고, 공식적인 심판회의에서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심판위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히 2013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좋지 못한 평가 속에 본선까지 남지 못하고, 프레지던트컵(16강 탈락 팀들의 순위 결정전)을 끝으로 대회 중간에 귀국했던 경험은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경험들은 소중한 자산이 되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국제심판, 꿈 그리고 가장

타지에서 함께 한 첫 째 아이의 200일
각종 국제/국내대회 출장으로 인해 1년에 150여일을 집 밖에서 보낸다는 것은 가장으로서 참 힘든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내 꿈이 무엇인지, 내 목표가 무엇인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반성하며 다독였다.

2014년 크로아티아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당시 둘 째 아이의 출산을 축하해준 국제심판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지지와 격려, 특히 아내의 열렬한 응원과 이해는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첫째 아이의 200일을 저 멀리 몬테네그로에서 지켜봤을 때에도, 둘째 아이의 출산을 크로아티아에서 숨죽이며 기다렸을 때에도, 우리 가족은, 그리고 아내는 늘 내 편이었다. 그 빚은 영원히 갚지 못할 지도 모른다.
카타르에서 덴마크까지, 그리고 브라질로

2014년 크로아티아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땀을 흘리며 휘슬을 불고 있는 이석 심판
2015년 한 해는 참으로 바쁘게 지나갔다. 카타르에서 열린 2015 남자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와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은 앞으로 남은 두 가지 큰 이벤트의 전주곡이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 달력이 두 장밖에 안 남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도 두 개의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릴 리우올림픽 아시아남자예선전과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5 세계여자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번 아시아남자예선은 우리 남자대표팀에는 그 어느 대회보다 중요한 대회다. 우리도 우리 선수들이 공정한 판정 속에 최선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나라를 대표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더불어 올해의 좋았던 경험과 그 기운이 카타르와 덴마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 동안의 평가와 이 두 대회의 평가가 더해져 내년 2016 리우올림픽에 나설 심판들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탄 급행열차의 최종 목적지가 브라질 리우 행이길 간절히 빌며, 오늘(11일) 중간 정착지인 카타르로 향한다. 2006년 원한의 땅이었던 카타르 도하가 10년이 지난 오늘, 나에겐 기회의 땅이 되길 바라는 아이러니함을 품에 안은 채...
글 : 대한핸드볼협회 국제심판 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