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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5년 11월 11일, 나를 돌아보다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5.11.12
조회수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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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카타르세계남자선수권대회 당시 이석(왼쪽)-구본옥(오른쪽) 심판

 

지금 나는 리우올림픽 남자핸드볼 아시아지역예선 참가를 위해 카타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라운지에 있다. 늦은 시간, 창밖의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지나왔다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는 기쁨도, 슬픔도, 안도도, 후회도 그리고 환희와 좌절도 있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대한민국-카타르의 4강전에서 쿠웨이트 심판들의 편파판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분노할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핸드볼을 위해 무작정 국제심판이 되겠다며 2007년 국내심판 자격증 취득을 시작으로 심판생활에 뛰어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의욕과 순수한 열정의 끝이 어디인지 감히 알 수 없었다.

 

국제심판, 급행열차를 타다

 

20122, 국제심판이 되었다. 20112월 대륙심판 자격증 취득 후 정확히 1년만의 일이었다. 그 후, 다양한 국제대회에 초청받아 휘슬을 불었다.

 


2013년 헝가리세계남자청소년선수권대회 당시 이석 심판

 

2012년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몬테네그로), 2013년 세계남자청소년선수권대회(헝가리), 2013년 세계여자선수권대회(세르비아), 2014년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크로아티아), 2014년 슈퍼글로브(카타르), 2015년 세계남자선수권대회(카타르),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까지...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각종 아시아대회를 제외하더라도 4년 간 7개의 국제핸드볼연맹(IHF) 주관 국제대회를 소화하였다. 이는 심판으로선 급행열차를 탄 거나 다름없었고, 그렇게 구본옥 심판과 나는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IHF는 심판의 역량이나 수준에 따라 대회 배정을 달리한다. , 새롭게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한 신진심판을 청소년선수권대회에 배정함으로써 경험을 쌓게 하는 동시에 그들을 평가하며,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했을 경우 주니어대회, 시니어대회로 등급을 올리며 기회와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끝은 모든 스포츠의 꽃, 올림픽이다. 따라서 국제심판이라 하더라도 올림픽/시니어대회에 도달하지 못하고, 청소년대회/주니어대회에서 심판의 경력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슈퍼글로브에서 경기를 앞둔 구본옥(왼쪽)-이석(오른쪽) 심판

 

이러한 상황에서 만4년 만에 2번의 시니어대회와 심판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슈퍼글로브 대회에 초청받아 휘슬을 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직도 30대 초반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내가 탄 급행열차의 최종 목적지는 올림픽 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4년여의 시간 동안 다양한 국제대회를 경험하면서 수많은 감정들과 대면했다. 비유럽출신의 국제심판으로서 2번의 청소년대회에서 4강전 경기에 배정받아 휘슬을 불었을 땐 어리둥절하면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5 남자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나의 우상과도 같았던 슬로베니아 심판들과 동료로서 함께 했을 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5년 카타르세계남자선수권대회 당시 이석 심판

 

국내에서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연속으로 결승전에 배정되어 경기를 운영했던 기억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앞으로 심판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던 건 아니었다. 경기 후,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팀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불만족스러운 시선을 느낄 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고, 공식적인 심판회의에서 미숙한 경기운영으로 심판위원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히 2013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좋지 못한 평가 속에 본선까지 남지 못하고, 프레지던트컵(16강 탈락 팀들의 순위 결정전)을 끝으로 대회 중간에 귀국했던 경험은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경험들은 소중한 자산이 되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국제심판, 꿈 그리고 가장 

 


타지에서 함께 한 첫 째 아이의 200일


각종 국제/국내대회 출장으로 인해 1년에 150여일을 집 밖에서 보낸다는 것은 가장으로서 참 힘든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내 꿈이 무엇인지, 내 목표가 무엇인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반성하며 다독였다.

 


2014년 크로아티아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당시 둘 째 아이의 출산을 축하해준 국제심판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지지와 격려, 특히 아내의 열렬한 응원과 이해는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첫째 아이의 200일을 저 멀리 몬테네그로에서 지켜봤을 때에도, 둘째 아이의 출산을 크로아티아에서 숨죽이며 기다렸을 때에도, 우리 가족은, 그리고 아내는 늘 내 편이었다. 그 빚은 영원히 갚지 못할 지도 모른다.

 

카타르에서 덴마크까지, 그리고 브라질로

 


2014년 크로아티아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땀을 흘리며 휘슬을 불고 있는 이석 심판

 

2015년 한 해는 참으로 바쁘게 지나갔다. 카타르에서 열린 2015 남자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와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은 앞으로 남은 두 가지 큰 이벤트의 전주곡이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 달력이 두 장밖에 안 남은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도 두 개의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릴 리우올림픽 아시아남자예선전과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5 세계여자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번 아시아남자예선은 우리 남자대표팀에는 그 어느 대회보다 중요한 대회다. 우리도 우리 선수들이 공정한 판정 속에 최선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나라를 대표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

 

더불어 올해의 좋았던 경험과 그 기운이 카타르와 덴마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 동안의 평가와 이 두 대회의 평가가 더해져 내년 2016 리우올림픽에 나설 심판들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탄 급행열차의 최종 목적지가 브라질 리우 행이길 간절히 빌며, 오늘(11) 중간 정착지인 카타르로 향한다. 2006년 원한의 땅이었던 카타르 도하가 10년이 지난 오늘, 나에겐 기회의 땅이 되길 바라는 아이러니함을 품에 안은 채...



글 : 대한핸드볼협회 국제심판 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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