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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핸드볼 맏언니 오성옥 \"올림픽에 다섯번째 나가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8.04.02
조회수
523
첨부
  • 내가 주인공이라지만
    날 너무 이상하게 그려 영화 \'우생순\' 안봐
    • 그녀는 올 여름 다섯 번째 올림픽에 나간다. 한국의 운동선수로서는 역대 최다 올림픽 출전기록이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기둥 오성옥(36·오스트리아 히포방크). 30일 프랑스 님에서 벌어진 국제핸드볼연맹(IHF) 최종예선에서 베이징 행 티켓을 확정한 오성옥은 31일 오전 8시(현지시각) 황급히 소속 팀으로 복귀했다.

      후배들은 그녀를 ‘핸드볼의 차범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대표팀 막내 김온아(20·벽산건설)은 “오성옥 선배님과 함께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했다. 경기를 읽는 시야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하지만 오성옥 본인은 “어떻게 차범근 같은 대스타와 비교할 수 있느냐”며 몸을 사렸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국 여자핸드볼의 간판스타인 그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 ▲ 한국 여자핸드볼의 맏언니 오성옥. 카메라에 담긴 아들 사진을 보여주면서“때묻지 않은 아이”라고 자랑했다.
    • ―이번 올림픽은 참 힘들게 본선에 나갔다.

      “특히 도쿄에서 열린 재경기가 힘들었다. 단 한 경기뿐인데 이번만큼 긴장했던 적은 없다.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상황에서 혹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나이 먹어서 추한 꼴을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 많이 했다. 경기 당일 아침엔 먹은 것도 토하고 몸이 말이 아니었다.”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던데.

      “후배들과 보통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선생님(코치) 같은 존재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가끔 태릉에 오는 사람이 나서서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그래서 웬만하면 말 안하고 사는데 그래도 후배들이 어려워한다. 내게서 ‘포스’가 느껴진다고 한다. 아마 생긴 게 좀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웃음).”

      ―우리 나이로 서른 일곱인데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건가?

      “전엔 마흔이 다가오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그만두려니 허전하더라. 일찍 그만둔 언니들도 무척 부러워하고. 아직 소속팀과 1년 계약이 남았다. 1년 하는 거 보고 내 실력이 아니다 싶으면 그만 하려고 한다. 반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계속하겠다.”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에 지금까지 금1, 은2개를 땄다.

      “후배들이 ‘나는 후보로라도 올림픽 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전엔 올림픽 금메달 따면 인생이 바뀌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올림픽은 스포츠 인들의 축제 아닌가? 지금은 축제를 즐기자는 마음이다.”

      ―2012년에도 나가는 것 아닌가?

      “헉, 나가길 바라나? (웃음) 아테네 올림픽 끝나고 이젠 세계무대에서 다시 뛰는 일은 없다고 다짐했다. 다시 뛰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근데 해보니 나쁘진 않다. 뛸 수 있을 때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회 연속 출전은 국내 처음이다. 핸드볼 선수로서 큰 족적을 세운 것 아닌가?

      “나는 그런 생각이 없는데 주위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이젠 힘들게 쌓아온 명예,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들 만끽하고 싶다.”

      ―핸드볼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데 영화는 봤나?

      “안 봤다. 그 영화 때문에 친정, 시댁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해야 한다며 난리가 났다. 내 모습이 너무 이상하게 그려졌다. 조카가 ‘이모, 왜 그렇게 불쌍하게 나와?’ 라고 묻더라. 우리 양가 모두 잘 산다. 선생님들이 다 나보고 어려움 없이 자라 힘든걸 모른다고 질책할 정도인데. 그래도 핸드볼 영화니까, 또 내 진짜 이야기가 아니니까 핸드볼 붐을 위해 참았다. 내 역할을 맡은 문소리 씨가 내 사인을 부탁하니까 신기하더라.”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오빠 소개로 만났다. 연구원이었다. 지금은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번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남편이 싫어해서 96년 결혼하면서 운동을 일찍 그만뒀는데 승구(아들) 낳고 98년 우연히 일본에 진출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남편이 지금은 완전히 후원자가 됐다. 내가 그렇게 실력 있는 줄 몰랐다면서, 실력이 아깝다고 밀어준다.”

      ―승구는 오성옥 선수에게 어떤 존재인가?

      “일본에 있을 땐 내가 거의 돌봐줬는데 유럽에선 사랑을 많이 못 줘 안타깝다. 그래도 또래 애들에 비해 때가 덜 묻은 것 같다. 내가 게임 뛰면 밖에서 공 차고 그랬다. 이건 영화랑 비슷하다. 이젠 ‘우리 엄마가 유명한 선수’라고 자랑한다. 남들은 착하다는데 남자 애라 애교도 없고 좀 그렇다. 그래서 일이 없으면(은퇴하면) 늦둥이라도 딸을 낳을까 생각 중이다.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더 원숙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얘기가 많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나이 먹어서 하는 플레이가 젊은 시절과는 다르다. 옛날엔 파워가 있었고 내 자신을 믿었다. 훈련을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은 노련미 하나로 승부하려니까 과연 내 몫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체력만 보완하면 되지 않는가?

      “올림픽 앞두고 몇 달 열심히 훈련하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없다. 후배들 자리를 빼앗지는 말아야 할 텐데. 내가 처음 올림픽 나갔을 때 지금 (김)온아 나이였다. 후배들도 키워야 한다. 나만 인터뷰하지 말고 후배들도 키워달라.”

      ―아직도 유럽 무대에서 잘 뛰고 있지 않는가? 작년 세계선수권에서도 어시스트와 가로채기 1위를 했다.

      “유럽에선 득점 위주의 플레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맡은 센터백이란 자리는 다른 공격수들을 살려주는 역할이다. 한창 때는 골, 돌파, 이런 것만 생각했는데 핸드볼은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조선일보  고석태 기자 kos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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