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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o2016 특집] 여자핸드볼의 찬란한 올림픽 도전기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6.07.24
조회수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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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첫 출전 그리고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

 

여자대표팀은 1984년 LA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에 참가해 일본, 중국과 각각 두 번씩 맞붙는 더블리그 방식으로 예선을 치렀다. 중국과의 첫 경기에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한 대표팀은 이후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3국이 3승 1패로 동률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득실에서 밀려 LA올림픽 티켓을 중국에 내주고 만다. 그렇게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은 좌절되는 듯했지만, 동구권 국가들이 LA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며 LA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얻게 된다. 당시 감독을 맡았던 이문식 감독은 "올림픽이 7월 15일에 열리는데 5월에 연락이 왔다. 이미 대표팀도 모두 해체된 상태여서 참으로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기회는 은메달이란 값진 결과로 이어지며 대한민국 핸드볼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낸다.

 

대표팀은 1998년 서울올림픽 예선에서 유고에 패하긴 했지만 조 1위로 결선라운드에 진출한다. 당시는 조 1, 2위 팀끼리 맞붙는 결선라운드에서 메달의 주인공을 가렸는데, 대표팀은 예선 1위를 하고도 유고가 조 2위로 올라오며 1패의 불리함을 안고 결선라운드에 돌입한다. 하지만 유고가 노르웨이와 소련에 모두 패하면서 노르웨이에 승리를 거둔 대표팀이 마지막 경기인 소련과의 경기를 이길 경우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주위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금메달은 힘들지 않겠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대표팀은 2점 차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대한민국 올림픽 구기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이기도 했다. 이후 대표팀은 서울올림픽의 여세를 몰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우승, 올림픽 2연패의 성과를 이루어낸다. 월등한 기량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결승에 오른 대표팀은 결승에서도 노르웨이에 7골 차의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당시 선수들은 "서울올림픽 금메달 후 국민적 관심으로 어느 때보다 사기가 높았고 선수 구성 또한 좋았다"고 회상했다.

 


 

덴마크, 그 악연의 시작

 

여자대표팀은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전인미답의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다. 대표팀은 총 8개팀이 참가한 올림픽 본선에서 앙골라(25-19), 노르웨이(25-21), 독일(33-20)을 차례로 꺾고 준결승에 올라 헝가리마저 39-25로 꺾으며 올림픽 3연패라는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앞에 복병이 나타난다. 바로 북유럽의 강호 덴마크였다. 덴마크는 동구권 국가들이 사회주의의 붕괴로 전력이 약화된 틈을 타 유럽핸드볼의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 대표팀은 아쉽게도 애틀랜타올림픽 결승전에서 기세가 오른 덴마크와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33-37로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을 이긴 덴마크는 여자핸드볼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준결승에서 한국에 패한 헝가리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오성옥, 이상은, 한선희, 허순영, 오영란 골키퍼 등 역대 최고의 대표팀 구성이라는 찬사 속에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나선 대표팀은 지난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아쉽게 내준 금메달을 꼭 다시 찾아오겠다며 남다른 각오로 대회에 임한다. 조별예선을 여유롭게 통과한 대표팀은 8강에서 브라질마저 11골 차로 이기며 쾌속 순항을 이어간다. 그런데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공교롭게도 4년 전 아픔을 안긴 덴마크였다. 대표팀으로서는 4년 전의 패배를 설욕할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그러나 주전 레프트백 이상은이 허벅지 부상으로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윙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한선희마저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대표팀은 전력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만다. 결국 대표팀은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하게 된 준결승전에서 덴마크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대표팀의 시드니올림픽 최종 순위는 4위. 시드니올림픽은 여자대표팀에게 가장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우생순’ 신화 그리고 또 한 번의 감동의 드라마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우생순''의 신화로 잘 알려져 있는 대회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아시아지역예선 탈락으로 올림픽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던 것. 다행히 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세계최종예선에 참가해 3위를 기록하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숙적'' 덴마크와 한 조에 속한 대표팀은 덴마크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2위로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브라질과 프랑스를 연파하고 결승에 오른 대표팀은 애틀란타올림픽 결승, 시드니올림픽 준결승에 이어 덴마크와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놓고 맞붙게 된다. 전후반을 동점으로 마친 두 팀은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며 ‘승부던지기’로 금메달의 주인공을 가리게 됐다. 하지만 대표팀은 승부던지기에서 2-4로 패하며 또 다시 덴마크에 무릎을 꿇고 만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에 가장 큰 감동을 준 대회로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되고 있고, 두 팀의 결승전은 아테네올림픽 10대 명승부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은 아시아지역예선에서 큰 암초를 만난다. 노골적 편파판정으로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한 것. 대표팀은 국제핸드볼연맹에 제소하는 한편 아테네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최종예선에 출전해 조 2위로 올림픽 진출에 성공한다. 그렇게 올림픽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세대교체의 실패로 노장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밖에 없었다. 코트를 떠났던 베테랑 선수들이 다시금 태극마크를 달았고 참가팀 중 평균 연령도 가장 높았다. 조 2위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대표팀은 주최국 중국을 꺾고 4강에서 북유럽의 강호 노르웨이를 만난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고 3점 차로 뒤졌던 대표팀은 마지막 투혼을 발휘,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마지막 노르웨이 공격이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대한민국의 골망을 흔들고 만다. 이 골은 오심으로 판명됐지만 대표팀은 두 개 대회 연속 오심에 울어야 했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대표팀의 투지는 온 국민에 ''우생순''신화 못지 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세대교체의 성공과 부상 암초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은 그동안 팀의 주축이던 노장 선수들이 대거 은퇴하기에 이른다. 앞서 열렸던 2011년 브라질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약체라 평가 받던 앙골라에 29-30, 한 점차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해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김온아와 류은희 두 대형급 선수가 새롭게 등장한 한국은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다시 한 번 국제무대에서 비상할 준비를 했다. 런던올림픽 조별예선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맞붙어 전혀 기죽지 않은 플레이를 펼친 대표팀은 3승 1무 1패의 기록으로 당당히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하는 저력을 보인다. 전통적인 유럽의 강호 덴마크를 한 점 차로 이기고 노르웨이와는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선전하며 다시 한 번 메달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하지만 김온아가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며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정유라도 프랑스와의 조별예선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만다. 주전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에도 8강에서 러시아를 한 점 차로 제압하며 8개 대회 연속 4강의 신화를 이어간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심해인마저 손목 부상을 당하며 노르웨이에 결승행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올림픽 이후 대표팀의 귀국 장면은 흡사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김온아와 정유라는 목발을 짚고 귀국했고 심해인은 손목에 붕대를 감고 귀국했다. 대표팀은 비록 올림픽 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 했지만 주축 선수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절대 주눅들지 않은 플레이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1990년 이후 출생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의 성공은 다시 한 번 한국여자핸드볼의 중흥기를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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