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미영 기자] [[역사 속 오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서 금메달 2연패 달성…뛰어난 기량으로 유럽 강호 차례로 재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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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2016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1992년 8월8일 바르셀로나 상호루 체육관. 마침내 벌어진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었다. 이제 스무살 갓넘긴 앳된 얼굴의 선수 7명의 비장한 표정을 하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평균신장이 7cm나 큰 노르웨이 팀과 마지막 승부를 벌여야 했다.
경기는 생각보다도 더 싱거왔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노르웨이 선수들의 철벽 수비를 특유의 스피드와 팀워크로 극복하고 28대21 대승을 거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은 두번째 여자 핸드볼 금메달이었다.
사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시작된 후 한국 여자 핸드볼 팀의 우승은 쉽게 점쳐졌다. 올림픽 예선전과 결승전 등을 통틀어 한국팀이 득점한 점수는 108점. 선수 1명당 평균 득점이 무려 27점이었다. 상대팀을 압도한 경기를 파죽지세로 이어갔다. 결승전에서 만난 노르웨이팀도 이미 예선전에서 11점차로 가볍게 누른 팀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승리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팀 구성부터가 문제였다. 1988년 올림픽 우승에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핸드볼 팀은 1990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다 할 실력발휘를 못했다. 지지부진한 결과는 팀의 전면적 교체로 이어졌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키가 크고 21~23세의 어린 선수가 대거 투입됐다. 신예들이 주축을 이루자, 핸드볼계는 물론 체육계에서도 노련한 선수가 없어 메달권 진입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론이 나왔다.
정형균 당시 여자 핸드볼 감독은 이러한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 준비를 위해 태릉선수촌에 모인 선수들을 고된 훈련으로 단련시켰다. 죽음의 훈련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400m 트랙을 20바퀴씩 돌았다. 아침을 먹고 나면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에 들어갔다. 오후에는 팀워크 위주 전술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 도중 선수들이 쓰러저 응급차가 오기도 했고, 일부는 훈련을 포기하고 선수촌을 떠나기도 했다. 올림픽 훈련이 이뤄진 태릉선수촌에 있던 다른 운동종목 감독들조차 핸드볼 대표 선수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할 정도였다.
이 지옥훈련으로 선수들은 정신력과 체력을 역대급 기량으로 다듬을 수 있었다. 실전에 들어간 선수들은 한뼘이나 차이나는 유럽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서로간 팀워크를 바탕으로 공수 전환도 빨랐다. 득점이 어느 경기보다 많이 터진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핸드볼 선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핸드볼은 여전히 ''비인기·효자종목''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여자 핸드볼 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이 2008년 1월 개봉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잠시 받았을 정도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팀은 1988년 올림픽 출전 이후 8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1994년 이후 24년 동안 ''금맛''을 보지 못했다. 24년 전에도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팀은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선수들은 고된 훈련으로 이번 올림픽을 준비했다. 올해 새로운 ''우생순''의 역전 드라마가 탄생할지 주목되는 이유기도 하다.
이미영 기자 mylee@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