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년만의 폭염이 찾아온 뜨거운 여름을 시원한 스포츠의 세계로 이끌었던 2016 리우올림픽(이하 리우올림픽)이 8월 22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화려한 삼바 리듬 속에 폐막했다. 3회 연속 ’10-10’(금메달 10개 이상-종합 순위 10위 이내) 달성을 목표로 했던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 208개 출전국(난민팀 제외) 중 8위를 차지하며 절반의 성공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 이후 4개 대회 연속 올림픽 ‘톱10’을 기록해 스포츠 강국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선전을 기대했던 종목에서 예상치 못 했던 탈락이 이어지며 4년을 준비했던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8회 연속 올림픽 4강 진출의 신화를 써내려 갔던 여자핸드볼도 유럽 강호들에 밀려 예선탈락이라는 낯선 상황에 몰렸다. 하지만 가슴 아파할 수만은 없다. 이제 우리는 4년 후를 기약하며 이들이 앞으로 흘릴 땀방울이 값진 결실로 되돌아오길 응원해야 할 때이다. 임영철 감독이 이끄는 여자대표팀은 8월 18일 리우올림픽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입국장을 빠져 나온 임영철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의 표정에서는 32년만에 올림픽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올림픽을 준비한 이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수들의 가족들과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들은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전세계 강호들 사이에서 올림픽을 치르고 돌아온 여자대표팀은 지난 4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한 동료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각자의 소속팀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자대표팀은 8월 15일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여자핸드볼 B조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28-22로 꺾고 1승1무3패, 승점 3점을 기록하며 올림픽 조별예선 일정을 마무리했다. 비록 A조와 B조 상위 4팀까지 진출하는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아르헨티나와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지막 경기까지 한국 핸드볼 특유의 투혼을 발휘한 여자대표팀의 모습에 현지 교민들 뿐만 아니라 브라질 현지 관중들까지 큰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지난 7월 26일 리우올림픽 출전을 위해 브라질로 출국한 여자대표팀은 조별 예선 첫 경기인 러시아전 승리를 위해 현지 도착 후 맞춤 전략 준비와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다. 세계랭킹 2위 러시아를 상대로 경기 한 때 7골 차까지 앞서며 올림픽 첫 승의 희망을 품었던 우리 여자대표팀은 후반전 들어 급격한 체력 저하로 역전을 허용하며 이번 올림픽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어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2연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세 번째 경기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백전노장’ 오영란(44세, 인천시청) 골키퍼가 경기종료 휘슬과 함께 주어진 네덜란드의 마지막 7m 드로우를 막아내며 드라마 같은 무승부를 지켜냈다. 비록 프랑스전까지 이 분위기를 이어가지는 못 했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으며 4년 후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은퇴가 예상되는 오영란(GK, 44세, 인천시청)와 우선희(RW, 38세, 삼척시청)의 투혼은 대표팀 젊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경기장을 찾은 현지 관중과 한국에서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 핸드볼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44세의 나이로 한국 선수단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오영란 골키퍼는 네덜란드전 마지막 7m 드로우를 선방하며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전에서는 38개 슛 중에서 17개를 막아내며 45%의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팀의 맏언니이자 수문장의 역할을 200%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산 5개월 만에 대표팀으로 돌아온 우선희도 스웨덴전에서 7골을 몰아넣는 등 앞선 4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고 아르헨티나전에서 4골을 성공시키는 등 60분 풀타임을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팀 공격의 한 축을 담당하며 5경기에서 16득점, 경기당 3골 이상의 득점력을 과시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멤버로 활약했던 두 선수는 12년이 지난 리우올림픽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국민들에게 스포츠 이상의 감동을 선물했고, 한국 핸드볼에 큰 기여를 함으로써 한국 여자핸드볼의 새로운 ‘레전드’로 이름을 남겼다.
귀국 현장에서 만난 오영란과 우선희의 얼굴에는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진한 아쉬움과 앞으로 한국 여자핸드볼을 이끌어갈 후배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 뒤섞여 있었다. 우선희는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눈물이 많이 났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눈물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결승이 아니라는 안타까움, 고생한 대가를 얻지 못 했다는 속상함, 후배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고 마지막 경기를 끝낸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리고는 “우리와 같은 B조에서 무려 3팀이 4강에 진출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이를 보면 우리 여자핸드볼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열심히 준비한다면 우리 후배들이 4년 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대표팀에 남아 앞으로 한국 여자핸드볼을 이끌어갈 후배들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는 오영란도 마찬가지였다. 오영란은 “우리 후배들은 4년 후 이렇게 쓰라린 마음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꼭 메달을 따서 금의환향했으면 좋겠고,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선수로서 조금 더 신경을 기울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또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젊은 선수들을 통해 한국 여자핸드볼의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네덜란드전과 아르헨티나전에서 각각 11골을 성공시키며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인 권한나(CB, 26세, 서울시청)와 두 경기에서 각각 6골을 넣은 최수민(LW, 26세, 서울시청)은 2020년 도쿄올림픽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김온아(CB, 27세, SK슈가글라이더즈)가 부상으로 조기 귀국한 이후 대체 선수로 투입된 송해림(CB, 32세, 서울시청)은 경기 조율 능력과 알토란 같은 득점으로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해내며 오랜만에 대표팀으로 돌아온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
러시아전에서 6골을 뽑아낸 정유라(RW, 24세, 대구시청)와 왼쪽 윙에서 제 몫을 담당한 이은비(LW, 25세, 부산시설공단)를 비롯해 약관의 나이에 주눅들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인 유소정(RB, 20세, SK슈가글라이더즈), 코트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강력한 슛으로 팀에 기여한 김진이(LB, 23세, 대구시청) 등은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아르헨티나전을 마치고 많은 눈물을 흘린 김진이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는데 저희가 성적으로 보답을 못 해서 죄송하다. 언니들과 함께 한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 해 아쉬움의 눈물이 많이 났다. 이번 아픔을 생각하면서 다시 힘내서 (4년 후를) 준비하겠다”고 두 언니와의 아픈 이별을 발판으로 앞으로의 4년을 이겨내겠다고 말했다.
류은희(RB, 26세, 인천시청)와 심해인(LB, 28세, 삼척시청), 박미라(GK, 28세, 삼척시청), 부상으로 교체된 김온아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고참으로 참가해 오영란, 우선희의 맏언니 역할을 물려받는 또 다른 레전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깨 부상 이후 곧바로 올림픽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당한 김온아의 몫까지 책임진 류은희는 “브라질 현지에서도 몸 상태가 100%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웠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얻은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데 그런 점을 보완해서 한국 핸드볼이 발전할 수 있게 다시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겠다”며 앞으로 한국 여자핸드볼을 이끌어갈 에이스다운 각오를 던졌다.

아울러, 이번 리우올림픽 여자핸드볼에서 확인한 것은 강호 유럽팀들의 경기력 상향 평준화와 이로 인한 본선 12개국의 대혼전이다. 세계 1위 독일, 3위 헝가리, 6위 덴마크를 비롯해 세르비아(7위), 폴란드(8위) 등이 대거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하며 본선 무대에 서지도 못했다. 특히, 올림픽 금메달만 3차례 거머쥔 덴마크의 탈락은 핸드볼계에 대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도 A조 스페인의 8강 턱걸이, 몬테네그로의 5전 전패는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던 반전이었다. 또한 동유럽의 최강자로 불리는 루마니아와 아시아 최강 한국의 8강 탈락도 이변이라는 분위기였다. 이처럼 국제 핸드볼은 유럽을 중심으로 강팀과 약팀이 없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틈에서 우리 여자핸드볼이 선전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해 보인다.


한국 핸드볼은 리우올림픽을 마치며 오영란, 우선희의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의 은퇴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으로 대변되는 한국 핸드볼의 시대는 마무리되고,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세대 구상에 들어간다. 한국 핸드볼은 감동의 눈물을 준 우생순을 넘어, 올림픽 기간 동안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준 국민들과 팬들에게 환희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행복한 핸드볼’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
누군가는 리우올림픽 여자대표팀의 실패를 거론할 것이다. 하지만 늘 위기의 순간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던 우리 여자핸드볼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기억하며 리우에서 흘린 눈물의 씨앗을 4년 후 도쿄에서 값진 열매로 거둬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