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주니어대표팀이 각각 아시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먼저 제20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 나선 여자주니어대표팀은 세계 7위의 성적표를 들고 귀국했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는 못 했지만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한 송지은이 득점상을 수상하며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뒤이어 제15회 아시아남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자주니어대표팀은 대회 3위에 올라 내년에 열릴 세계남자주니어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다수의 국제대회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박광순의 활약이 돋보였다. 박광순은 매 경기 팀의 주득점원 역할을 해내며 남자핸드볼 차세대 간판 공격수 자리를 예약했다.

침체된 한국 남자핸드볼의 기대주
제15회 아시아남자주니어선수권대회를 3위로 마무리한 남자주니어대표팀은 8월 3일 귀국했다. 박성립 감독을 필두로 속속 인천공항을 빠져 나온 남자주니어선수들 중 주전 센터백으로 대회 내내 남자주니어대표팀의 공격을 이끈 박광순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박광순은 “제가 더 잘했었으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겼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답했다. 남자주니어대표팀은 준결승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한 점차로 져 목표했던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8강 리그전에서 이란과 경기 막판까지 접전을 치른 탓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비록 주변의 기대에 부응할만한 성적을 내지는 못 했지만 대회를 다녀온 선수들은 저마다 값진 경험을 쌓고 돌아왔다. 박광순도 그랬다. “성적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일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선수들끼리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수비력과 체력, 1대1 페인팅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많은 점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박광순은 같은 나이대 선수들보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지난해 박광순은 각급 대표팀을 오가느라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부상도 있었지만 이미 박광순의 능력을 알아본 각급 대표팀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세계남자청소년대회부터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 등 청소년대표부터 성인대표까지 오갔다. 지난해를 떠올리며 박광순은 “대표팀에 차출됐을 때 (윤)시열이 형을 보며 많이 배웠다. 시열이 형의 중거리슛은 정말 일품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언을 자주 해주셨기 때문에 열심히 해서 시열이 형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제2의 윤시열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슛과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오가는 다재다능함이 박광순의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의 박광순이 있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를 따라 핸드볼을 시작했다는 박광순. 그러나 중학교 입학 후 그의 방황이 시작됐다.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핸드볼을 그만뒀다. 그렇게 코트를 떠났던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핸드볼공을 잡았다. 박광순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니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든 생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핸드볼’이었다.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다시 핸드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년의 공백을 메우고 부상으로 떨어진 체력과 경기감각을 키우기 위해 더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 결과, 박광순은 소속팀 경희대를 이끄는 주전 센터백으로 성장했다. 현재 경희대는 2016 대학핸드볼리그 1위를 달리고 있고, 그 중심에는 박광순이 있다.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가 리그 후반기를 치르고 있는 그는 “평소대로 준비하면 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코트를 떠나 있는 동안 핸드볼에 대한 간절함을 느낀 박광순은 “(남자핸드볼의 인기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계대회에 나가 메달도 따고, 한국을 넘어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남자핸드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핸드볼에 대한 간절했던 마음을 떠올리며 침체된 한국 남자핸드볼의 붐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벤치워머에서 에이스가 되기까지
지난 7월 16일 막을 내린 제20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여자주니어대표팀의 센터백 송지은이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14년 제19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이효진이 이 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2회 연속 한국 선수가 최다 득점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번 대회 여자주니어대표팀은 최종 7위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송지은의 최다 득점상 수상은 한국 여자핸드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기 충분했다. 송지은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주전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송지은의 이름은 주목받지 못 했다. 그런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전 참가했던 덴마크 4개국 초청대회에서 송지은의 성실한 모습과 활약이 스스로 그녀를 주전 센터백 자리에 서도록 이끌었다. 송지은은 이번 대회에서 9경기에 출전해 무려 85골을 기록, 골 적중률 67.5%로 순도 높은 골 결정력을 선보이며 감독의 믿음에 완벽히 부응했다.
대회가 끝나고 한 달 후, 송지은과 인터뷰에서 세계대회 득점왕에 오른 소감을 물었다. 여전히 대회의 열기가 식지 않은 듯 한 송지은은 “덴마크 초청대회 이후 주전으로 뛰게 돼서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컸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크고, 리그에서도 이러한 활약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도 되지만 (최고 득점상을 받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고 답했다. 사실 송지은은 이 대회 전까지 주위의 기대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핸드볼부 언니들의 운동하는 모습이 멋있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핸드볼을 시작한 송지은은 체격도 작고, 손도 작았다. 힘든 운동을 시작한 딸을 보며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중학교 시절 힘들어 하는 딸을 끝까지 믿어주고, 격려해주었던 부모님이 있어 송지은은 실업무대까지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업무대 진출 이후에도 송지은은 빛을 보지 못 했다. 국내외 대회를 통틀어 개인상을 수상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단 한 번뿐이었다. 각급 대표팀에 뽑혀 국제대회를 출전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송지은의 자리는 벤치였다. 송지은이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6 SK핸드볼코리아리그가 시작되면서였다. 김온아의 이적으로 송지은은 인천시청의 주전 센터백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김온아라는 걸출한선수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송지은에게는 부담도 됐지만 자신을 알리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송지은은 “이번 시즌 전 선수들끼리 ‘우리는 이제 잃을 것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잃을 게 없으니 선수들끼리 더 똘똘 뭉쳐서 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고, 팀 언니들이 잘 이끌어준 덕분에 제가 어려움 없이 경기를 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올해 자신이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예전처럼 경기를 많이 뛰지 않았다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활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리그에서 경기 경험을 쌓은 덕분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송지은은 “이번 대회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제 스스로 가장 얻은 게 많은 대회였다. 정말 사소한 것까지 느끼고 배울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도 가장 만족스러운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를 발판으로 송지은은 한국 여자핸드볼의 새로운 해결사로 성장할 날을 꿈꾸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김온아가 송지은의 롤모델이다. 송지은은 “(김)온아 언니처럼 경기가 안 풀릴 때 나타나는 해결사가 되고 싶다. 언젠가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최종 목표다”며 머지 않아 다가올 자신의 멋진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대한핸드볼협회 윤초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