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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대표 첫 주장으로 고향에서 들어 올린 우승트로피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7.05.03
조회수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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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의 국제대회, 결혼하고 첫 번째 그것도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첫 국제대회. 정지해에게 제16회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는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안겨준 대회다. 그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직접 두 손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니 감격은 더했으리라. 이제는 각자 소속팀으로 복귀해 2017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순위싸움이 한창이던 어느 날 정지해를 만나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뒷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최고 연장자에 주장까지

 

정지해는 올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소속팀이 2017 SK핸드볼코리아리그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정지해는 스스로 자책했다. 1월에 결혼식을 올린 까닭에 리그 준비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대로 경기 결과로 드러났다. 모든 결과가 자신의 탓인 것 같았고 주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대표팀 발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리우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속상했다. 몸도 좋지 않아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래도 막상 탈락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이번에도 리그 성적이 좋지 않아 뽑히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표팀에 뽑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주장까지 맡게 됐다. 한 마디로 얼떨떨했다. “잘 해서 뽑혔으면 모르겠는데 내 자신도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주장까지 맡게 되니 여러모로 부담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정지해는 국가대표로서 경력은 아쉬움이 있다. 국내에서는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자 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최다골을 기록하고 있지만 국가대표로서는 활약할 시간이 부족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코트에서보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국가대표로서 금메달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이 유일했다. 그런데 주장을 맡아달라니, 정지해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때 옆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남편과 가족이었다. 같은 핸드볼 선수 출신인 남편은 누구보다 그런 정지해를 자랑스러워했고 가족들도 격려하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옆에 누가 있다는 게 이렇게 큰 힘이 되는구나 비로소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정지해는 태릉선수촌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선수 정지해로 기억되고 싶어


정지해는 이번 대표팀에서 최고 연장자였다. 자연스레 처음 태극마크를 달던 때가 떠올랐다. “21살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인데 마냥 신기하던 때였다. 내가 국가대표가 됐구나 나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구나 그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 언니들 따라서 그냥 열심히 훈련만 했던 것 같은데 어느덧 최고참이 되었다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동생들이 잘 따라 주었고 이 기회를 통해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핸드볼코리아리그 준비 때문에 우승 후 동생들과 깊은 얘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스스로 느끼고 알아서 잘 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 부족했음에도 잘 따라준 동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탓일까? 이번 대표팀은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정지해와 막내와 나이 차이는 11살이었고 대부분 20대가 주를 이뤘다. 그런 까닭에 서로 잘 어울렸고 때론 짓궂은 장난도 치는 밝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이 이어졌다.


또 하나는 선수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쳤다. 선수들 스스로가 여자핸드볼의 현재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긴장감이 선수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런 긴장감은 선수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훈련방법을 체계화 하고 과학적인 시도를 하는 등 협회의 노력도 선수들이 자발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몫했다.

 

“선수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체력이나 능력이 다 다른데 인터벌을 뛰거나 런닝머신을 뛸 때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슷한 선수들끼리 그룹별로 나눠 훈련하니까 최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고 이런 달라진 국가대표의 훈련법도 선수들에게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됐다.”

 

 

정지해에게 이번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는 아주 특별한 대회다. 바로 정지해가 태어난 수원에서 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정지해는 수원 파장동에서 태어나 송죽초등학교 6학년 때 핸드볼을 처음 시작했고 송원여중, 수지고를 거치며 선수로 성장했다. 그녀가 자란 파장동은 대회가 열린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불과 8km 거리에 있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인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것 같다. 동생들을 잘 이끌어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준 동생들도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고생한 것에 비해 늘 성과가 좋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런 큰 영광의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것도 너무 감사했다. 고향에서 그것도 첫 주장으로나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한 순간이 될 것 같다.”


어느덧 그녀의 나이 서른셋. 정지해는 선수로서는 어쩌면 장년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슬슬 선수 이후의 삶을 설계해야 할 나이가 됐다. 하지만 국가대표로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바로 2018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은 황당했다. “요즘 여자핸드볼이 많이 힘든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현재 연금 점수가 1점이 모자란다. 아마도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될 것 같은데 2018 아시안게임에서 대표로 뽑혀 꼭 금메달을 따고 연금 혜택도 받았으면 좋겠다.” 애교 섞인 그녀의 대답에서 자연스레 미소가 머금어졌다.


 

마지막으로 ‘여자 정지해, 아내 정지해, 주장 정지해, 핸드볼 선수 정지해’ 중 하나를 골라달라고 물었다. 정지해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핸드볼 선수 정지해’라고 답했다. 핸드볼을 통해 행복, 감동, 희열, 슬픔, 좌절 이 모든 것을 느껴온 정지해. 그리고 지금은 그 핸드볼로 인해 사랑까지 얻었다. 정지해의 핸드볼 선수로서 국가대표로서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라본다.

 


(본 인터뷰 내용은 핸드볼코리아 28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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