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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열린 IHF 자체예선을 마치고 귀국한 여자핸드볼 대표선수들은 4월 6일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다시 한번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연합포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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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3월 정진규 감독이 이끄는 윤병순 등 14명의 한국 여자핸드볼 선수들은 30여 시간의 긴 비행 끝에 프랑스를 거쳐 아프리카의 콩고에 도착했다.
그해 7월 열릴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아시아ㆍ아프리카ㆍ북미 대륙예선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나 이제나 아프리카는 낯선 곳이다. 게다가 당시 콩고는 사회주의 체제였다.
출국 전에 적성국을 여행하기 위한 소양교육을 받은 기억이 생생한 데다 경기장을 오가는 선수단 버스를 무장한 군인들이 호위하고 일반인들의 접촉을 막고 있었으니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한술 더 떠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선수들은 눈을 의심했다. 육상 트랙이 있는 종합운동장 본부석 쪽에 임시로 핸드볼 코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코트를 둘러싼 가운데 경기가 진행됐다.
모교인 일신여고에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윤병순 코치는 “콩고를 떠나기 전날 숙소에 전기가 끊겨 자동차 전조등을 켜 놓고 식사를 하고 짐을 챙긴 건 아직도 잊지 못하는 특별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전해 11월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예선에서 일본과 대만에 4전 전승을 거둔 한국은 미국과 콩고와 벌인 대륙 예선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며 4전 전승으로 본선 출전권을 땄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여자핸드볼이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지 4년 만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그러나 여자핸드볼 대표선수들은 그해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올림픽 불참 대열에 한국도 끼었기 때문이다.
여자핸드볼뿐만 아니라 여자양궁의 김진호, 유도 71kg급의 박종학 등 그 무렵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선수들이 올림픽 메달의 꿈을 포기했다.
4년 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다시 한번 반쪽 대회로 치러졌지만 여자핸드볼은 주최국 미국 등 출전 6개국 가운데 3승1무1패를 기록해 5전 전승의 유고슬라비아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여자배구 동메달에 이어 8년 만에 여자농구와 함께 올림픽 구기종목 메달의 주인공이 된 여자핸드볼 대표팀에는 모스크바 대회에 가지 못해 못내 섭섭했던 왼손 골잡이 윤병순도 있었다.
윤병순의 후배들은 1984년 이후 20년 동안 6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오르며 금메달 2개(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와 은메달 2개(1996년 애틀랜타, 2004년 아테네)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올림픽 여자핸드볼에서 한국보다 앞선 성적을 올린 나라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2004년 아테네 대회까지 3연속 우승한 덴마크밖에 없다.
한국은 아시아예선, 아시아예선 재경기, 국제핸드볼연맹(IHF) 자체예선 등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연속 출전 기록을 이어갔지만 조금은 허탈하다.
4년 전 아테네 대회 결승에서 두 차례 연장전과 승부던지기 끝에 진 빚을 갚아야 할 상대인 덴마크가 본선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핸드볼은 야구ㆍ축구ㆍ농구ㆍ배구 등 이른바 4대 구기종목에 밀려 비인기종목으로 취급 받고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핸드볼만큼 친숙한 종목도 없다.
올림픽 역사만 따져도 1936년 베를린 대회 때 처음 정식종목(11인제)이 됐으니 농구와 동기이고 배구(1964년 도쿄), 야구(1992년 바르셀로나)보다 훨씬 선배다.
신세대 스포츠팬들에게는 비교적 낯선 종목 이름이지만 1960,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연령대라면 송구(핸드볼)가 그리 낯선 종목이 아니다.
거의 모든 학교 운동장에는 송구 골대가 마련돼 있었다. 간이 축구장으로 많이 쓰이긴 했지만. 체육관이 아닌 맨땅에서 하는 송구의 재미도 나름대로 있었다.
한국은 1992년 8월 8일(현지시간) 벌어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에서 경기 내내 한 번의 역전도 내주지 않은 채 노르웨이를 28-21로 물리치고 올림픽 2연속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경기가 끝나자 한국선수들이 코트 가운데 모여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기자회견장에서 외신기자 몇몇이 “한국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 무릎을 꿇고 뭔가 하던데 그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소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정형균 감독은 또박또박 영어로 대답했다. “선수들이 팀워크를 다지기 위한 행동”이라고.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체력은 태릉선수촌 안에서도 늘 화제다.
유럽선수들과 맞설 수 있는 체력과 팀워크에는 누구도 모르는 땀과 눈물이 있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윤병순 코치는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요즘 후배들은 우리 때보다 스포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기종목에 비해 관심이 덜한 게 사실입니다. 좀 더 많은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