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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교 핸드볼 70년 역사를 간직한 청주공업고등학교

작성자
Handballkorea
등록일
2017.07.28
조회수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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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과 함께 ‘대한송구협회’가 창설되며 한국 핸드볼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많은 학교들이 창단과 해체, 그리고 재창단을 반복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157개의 핸드볼팀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 70년이 넘는 역사를 오롯이 한 곳만 바라보며,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명맥을 유지해 온 학교가 있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청주공업고등학교(이하 청주공고)가 그주인공이다. ‘핸드볼 역사를 찾아서’ 이번 호에서는 청주공고를 찾아 탄생 배경과 유구한 역사의 뒤편에 감춰진 애환을 들어봤다.

 

 


 


 

 

방문하기 전, 우리가 예상했던 청주공고 핸드볼팀의 창단 시기는 1950년대 초였다. 청주공고가 1953년과 54년 연속해서 종별선수권대회를 제패했고, 그 전에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학교를 방문 후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청주공고가 1946년 ‘청주공업중학교’란 이름으로 개교했는데 당시에 이미 핸드볼을 하고 있었던 것. 청주공고 김태현 감독은 “2회 졸업생 중 교장으로 퇴임한 분이 핸드볼선수 생활을 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개교 당시 핸드볼을 이미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는 ‘청주공고오십년사’ 연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혁에는 1948년 제37회 전국체육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미처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문득 이러한 사실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다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대한체육회 100주년 기념사업부 김춘기 과장에게 대한체육회 50년사 책자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1948년도는 우승과 준우승팀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2020년 대한체육회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한 사업을 준비 중인 부서에서 조차 확인이 어려운 오랜 역사였다. 원하는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오래된 역사임을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에 핸드볼이 본격화한 시기와 청주공고가 핸드볼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동일하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그런 오랜 역사와 더불어 한 번도 해체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온 것 또한 대단한 일이었다. 강산이 수어 번 바뀌었고, 12인제로시작된 핸드볼이 7인제로 변모하는 과정도 함께 했다. 그 사이 어려움이 왜 없었으랴? 연광영(26회 졸업) 증평군체육회 사무국장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체육관이 없었다. 그래서 맨땅에서 훈련을 해야 했다. 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밤에는 별을 벗 삼아, 겨울에는 추위를 벗 삼아 달렸다. 겨울에는 찬 기운 때문에 조금만 뛰어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흔히들 수돗물로 허기를 채웠다고 하는데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땀이 베인 유니폼은 차라리 시원해서 그걸 입고 그대로 훈련하기도 했고, 그 옷이 마르면 소금기 자국이 선명하게 남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최병연(33회 졸업) 대연산업 대표이사는 “1983년부터 충북실내체육관을 임대할 수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운동장에서 훈련했고 대회가 가까워지면 시에 요청해 체육관에서 훈련했다. 지금은 당연한 거지만 당시 우리는 실내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꼈다”고 전했다. 어느 학교나 그렇듯 청주공고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송권석(36회) 충북핸드볼협회 전무이사는 “코치가 자주 그만뒀다. 재정적으로 어려워 코치월급을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코치가 없어 때로는 선배들이 와서 가르치기도 했다”고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어려움 이겨내고 미래를 밝히다

 

그러한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렀다. 청주공고는 2010년대 들어 전국대회에서 연이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는 다 재정적 기반이 잘 갖추어진 탓이라고 안광규 총동문회장은 말했다. “2010년 운영위원장 당시 대구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는데, 8강전에서 잘 싸우고도 후반에 체력 때문에 패했다. 당시 선수가 8명밖에 없어 교체할 선수가 없었다. 교장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운영자금을 늘렸다.” 재정적으로 넉넉해지자 성적은 따라왔다. 청주공고는 2012년, 협회장배 전국중고등핸드볼대회와 제67회 전국종별핸드볼선수권대회를 연속 제패했다. 당시 청주공고의 골문을 지키던 선수가 청소년대표로 2015 세계남자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존재감을 알린 지형진(상무피닉스) 골키퍼다. 또 남자핸드볼의 기대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박광순(경희대)이 활약한 2014년에는 부천공고, 전북제일고 등 강팀의 틈바구니에서 제11회 태백산기전국종합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동기 교감과 김태현 감독은 앞으로는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앞 다퉈 얘기했다. 가장 먼저 재정적 안정을 들 수 있다. 안광규 총동문회장이 취임한 후 다방면으로 협조를 구한 끝에 재정적으로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 청주공고는 핸드볼전용코트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은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또, 제주지역 선수들을 받아들여 선수 수급 문제도 해결했다. 현재 청주공고 핸드볼팀은 총 15명으로 되어 있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더욱더 선수 수급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증평중에서 엘리트팀을 다시 운영하기로 했다. 이전까지 충북지역 중학교 중 진천중만이 핸드볼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송권식 전무이사는 오랜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로 동문선배들의 모교사랑을 들었다. “학교 다닐 때는 선배들이 코치 대신 훈련 지도를 해주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어려운 시기를 보냈고, 그 아픔을 후배들에게는 전하고 싶지 않는 선배들의 마음가짐이지 않겠냐”고 했다.

 

역사 존재 이유는 이를 본보기로 올바른 나아갈 길을 찾고자 함이다. 청주공고는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숱한 어려움과 고난을 인내하고 이겨내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들이 전한 지난날의 흔적은 ‘못산 시대’, ‘웃픈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배우고 표본으로 삼아야할 참된 역사다.

 

 

(본 내용은 고병훈 경기력향상위원장과 청주공고 조동기 교감, 김태현 감독의 대담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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