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핸드볼 황제’ 12년 만에 돌아오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8.06.13
조회수
705
첨부

윤경신씨, 독일 생활 접고 국내팀 입단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 ‘제2의 차붐’
“진출 초기엔 축구하는 차두리 부러워
베이징올림픽 끝나면 태극마크 반납”

‘핸드볼 황제’ 윤경신(35·사진)이 돌아온다. 윤경신은 12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7월부터 두산 유니폼을 입는다.

그는 독일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제2의 차붐’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가 한국행을 결정하자 독일 유력지 슈피겔은 핸드볼 잡지 ‘한트발 마가친’의 기사를 인용해 6회에 걸쳐 특집을 연재했을 정도다. 특집기사에 따르면 독일의 한 핸드볼팀 감독은 “그는 인간이 아니라 로켓과 같았다”라고 말했다. 같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골키퍼 요하네스 비터는 “윤경신과 함께 뛴 것은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윤경신은 분데스리가에서의 12년간 총 7회 득점왕에 올랐다. 통산 2908골로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득점도 기록했다. ‘슈피겔’은 이와 관련, “윤경신을 쫓고 있는 선수가 2460골을 기록중이어서 그의 기록은 독일 핸드볼 역사에서 좀처럼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귀국한 그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m3cm의 장신인 그와 함께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다녔다.

그에게 먼저 왜 한국에 돌아왔느냐를 물어봤다. 절정의 기량에 있는 그가 핸드볼의 인기가 높은 독일을 떠나 귀국한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유년팀과 실업팀, 프로팀을 합쳐 3000개 이상의 팀이 있을 정도로 핸드볼의 인기가 높은 독일에서 경기마다 6000~1만 관중의 환호를 받고 뛰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핸드볼은 ‘한데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찬밥 신세이다.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실천했다”며 “‘나이 들어서 이제 못 뛰는구나’ 하는 말은 정말 듣기 싫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속팀 함부르크SV와 계약 기간을 두고 이견이 있을 때 두산 이야기가 나왔다”며 “언젠가 갈 한국인데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독일에서 그는 여행사·은행 등의 광고에 출연했고 나이키·아디다스 등 스포츠업체 4~5군데의 협찬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연봉도 줄었다. 4살이 된 아들 재준이의 생활 환경이 크게 변한다는 점도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핸드볼계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했다. 각 분야에서 국제적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27·맨유)·김연아(18·군포 수리고) 등에 비한다면 그에 대한 한국의 대접은 섭섭할만도 하다.

윤경신은 “독일에 처음 갔을 때 차범근 감독(수원)이 식사 초대를 했는데 당시 15살 남짓이던 두리가 인기종목인 축구를 하면서 풍족한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핸드볼을 하면서 이만큼 큰 것도 핸드볼 선수로서는 행운아라는 생각을 한다”며 “하키 등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펼치면서도 한국에서 대접을 못받는 선수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올해 서른다섯. 현역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그는 “두산 코치가 나보다도 나이가 어려 걱정이다”라고 너스레를 떨더니 “두산과 3년 계약인데 딱 계약기간만큼 뛴 뒤 선수생활을 접고 제2의 길을 걷고싶다”라고 밝혔다.

윤경신은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가 오래 버티면 후배들의 길을 막는 것”이라며 “베이징이 마지막인 만큼 좋은 성적을 위해 팀 내에서 대포가 아닌 소총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지원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은퇴 뒤를 위해 모교인 경희대 마케팅대학원에 지원해뒀다.

<중앙일보  글=온누리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