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일본스포츠계를 발칵 뒤집은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여성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남자실업팀 감독을 맡게 된 것. 이 일은 핸드볼뿐만 아니라 일본스포츠계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더 주목을 끈 것은 그 사람이 일본인이 아닌 이방인, 그것도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건너가 30여 년을 일본에서 생활하며 한국핸드볼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김명혜 감독이 그 주 인공이다. 지난 6월말 김명혜 감독이 오랜만에 우리나라를 찾았다.

핸드볼을 배우기 위해 택한 일본행
“30년 만에 한국에서 인터뷰 연락이 온 건 처음이네요.” 오랜 일본 생활로 이제는 잊혀진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열심히 생활하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며, 반갑게 인터뷰에 응한 김명혜 감독이었다.
김명혜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진출한 두 번째 핸드볼 선수다. 첫 번째는 이상옥 원로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LA올림픽과 서울올림픽에서 성적이 좋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최고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직접 배워보고 싶고 잘하는 선수들과 경쟁해 보고 싶었다.” 김명혜 감독은 일본을 가본 적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무작정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당시는 2년 정도만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약이 끝나갈 무렵 소속팀에서 코치 제의가 왔고,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넘기다보니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 긴 시간 김명혜 감독을 지탱해 준 것은 소위 ‘악바리 근성’이었다. 김명혜 감독은 일본어도 독학으로 공부했다. 무조건 부딪히면서 배웠다. 처음에는 음식이 맞지 않아 컵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고, 몸무게는 50kg 이하로 내려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도 깐깐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였다. 한번은 일본 선수와 다툼이 있었는데, 억울하고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해결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 그들 사이에서 나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은 스스로 강해지는 길밖에는 없었다. ‘부탁합니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끝이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근성으로 살아남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쌓은 김명혜 감독의 투지와 근성은 일본 여성들에게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알아 본 일본인들이 점차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코치의 길로 들어선 김명혜 감독은 북국은행(北国銀行)에서 8년, 도야마 다테야마(立 山)알루미늄 8년, 주니어대표를 맡아 3년, 도요타방직으로 자리를 옮겨 10년의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성옥 감독의 국내 복귀로 공석이 된 히로시마 메이플레즈의 감독에 선임되며 감독으로 첫 스타트를 끊었다. 감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요타방직 코치로 옮길 당시 도야마 지역에서 감독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신이 없었다.
코치를 하면서 감독의 일상을 지척에서 봐왔기 때문에 ‘힘이 들다’는 것도 알았고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일본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변화가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당시에 감독직을 수락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하다. 어차피 해야 할 감독이었다면 시행착오를 보다 일찍 겪었을 테니 말이다.
지도자 경력 32년의 베테랑인 김명혜 감독이었지만 초보감독으로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오성옥 감독이 그만 두며 팀을 옮긴 선수가 일곱 명에 달했다. 팀을 재건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송해림(서울시청)도 국내 복귀하며 의지할 한국 선수도 없었다.
부임 초창기 하루가 멀다 하고 눈물을 흘렸다. 서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팀을 재건하고 2년 차, 3년 차가 되며 팀의 성적이 좋아지자 김명혜 감독을 인정해 주었고, 돌아섰던 이들도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금녀의 벽을 허물고, 남자실업팀 감독으로
사실 김명혜 감독은 히로시마와 계약이 끝난 올해 일본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즐겁게 가르치던 코치시절과 달리 성적의 압박, 선수들과의 소통, 그리고 팀의 재정적인 문제까
지 고민해야 하는 감독의 자리는 김명혜 감독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도요타방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감독 제의가 왔고, 김명혜 감독은 더 큰 도전을 위해 감독 제의를 수락했다.

김명혜 감독은 부임 후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팀 체질개선에 들어갔다. 대부분이 코치시절 함께 했던 선수들이었는데, 3년 전과 비교해 제자리 실력이었다. 감독 부임 후 김명혜 감독은 7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리며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또, 5월에 열린 전 일본사회인선수권대회(종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7년 만에 결승리그에 진출해 4위를 했다. 여자 감독이 남자실업팀을 맡게 된 것도 화젯거리인데 성적도 좋아지자 김명혜 감독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김명혜 감독은 “감독회의가 있을 때 여자는 나 하나뿐이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과 더불어 내가 잘하고 있구나 느낀다.”고 전했다. 김명혜 감독은 30년 넘게 일본에서 생활하며 달라진 한국핸드볼의 위상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선수일 때만 해도 일본에 한수를 배운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나는 핸드볼 유학을 떠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서로 한국인 지도자를 원하고 있고, 나에게도 소개를 부탁해 오기도 한다. 한국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달라진 한국핸드볼의 위상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고 긍지와 자부심도 느꼈다. 어쩌면 내가 더 당당히 30년이란 긴 시간을 타지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
(본 콘텐츠는 핸드볼코리아 35호에 실린 기사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