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인 감독의 열풍이 거셌다. 베트남 남자축구 박항서 감독, 일본 배드민턴 박주봉 감독, 라오스의 야구 개척자 이만수 단장, 대만 양궁 구자청 前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핸드볼에서는 주최국 인도네시아 남녀대표팀의 총감독을 맡은 윤태일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윤태일 감독은 조별예선에서 말레이시아를 23-15로 이기며 인도네시아 여자핸드볼 역사상 국제대회 첫 승의 기록을 썼다.
또 다른 기억이 되었던 인도네시아 감독
윤태일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 해외를 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2005년 처음 카자흐스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10년 넘게 국가대표팀을 지도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인도네시아의 남녀대표팀 총감독을 맡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 수준의 핸드볼 실력이다. 핸드볼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는 실정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윤 감독은 처음 제의가 왔을 때 그러려니 했지만 현실을 안 뒤에는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 2월 12일 선수들과 첫 대면했다. 인도네시아 핸드볼은 우리나라 중학교 중하위팀 수준 정도다. 시간은 없는데, 대회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패스도 슛도 엉망이었다. 그래서 기본기부터 가르쳤다. 기본기가 익숙해질 때 즈음 되니 대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1년 정도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쉬운 마음을 안고 대회에 출전 했다.
윤태일 감독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기록한 결과는 7전 1승 6패. 윤태일 감독은 결과를 얘기하며 그저 허허 웃었다. "지도자 생활한지 30여년이 됐는데 이런 대회는 처음이었다. 선수나 지도자로 참가한 대회에서 운이 좋게도 성적이 대체로 좋았다. 1995년 제12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코치로 참가했고,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은메달도 함께 했다. 남자대표팀이 세계선수권대회 최고 성적을 기록한 1997년 15회 세계남자선수권대회(8위 기록)에도 코치로 참가했다. 선수들 기량이 부족한 건 인정하지만 지는 거에 익숙하지 않아 막상 패배에 직면하니 허무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 1승의 의미는 인도네시아에 남달랐다. 국제대회에서 거둔 첫 승리였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고 선수들과 인도네시아 코치들이 찾아와 그래도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성적과는 무관하게 가슴에 전해오는 찡한 감동이 있었다.
해외에서 나는 이방인
"국내에서는 능력이 안 되나 보다(웃음)." 해외에서의 오랜 감독직 생활에 대해 이유를 묻자 유쾌한 대답이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카자흐스탄 여자대표팀을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알마티 실업팀을 카자흐스탄 실업리그 4년 연속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놓는 등 큰 족적을 남긴 윤 감독이기에 그저 너스레로 받아들였다.
좋은 성적을 올렸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변함이 없었다. 시기와 질투만이 있었다. 해외에서 윤 감독은 다른 말을 하는 그저 이방인에 불과했다. 문화적 차이는 윤 감독이 해외에서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의사소통도 힘든 점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통역에 의지해 선수들과 소통했지만, 작전타임 시간이나 경기 중 선수들과 소통할 때는 통역으로 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했다. 하는 수 없이 선수들을 지도하며 러시아어 배우기를 병행했고, 어려운 단어는 되레 선수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윤 감독의 가족에게도 의도치 않은 해외생활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처음 카자흐스탄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두 딸의 나이는 초등학생이었다. 사춘기의 예민한 시기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윤 감독의 아내와 두 딸은 윤 감독의 든든한 지원자였다. 윤 감독의 결정을 존중했고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윤 감독은 덕분에 영어도 배우고 러시아에도 배우지 않았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뭍어나 있었다.
해외에서 느끼는 또 다른 희열
윤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0년 제13회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와 2014년 제19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다.
2010년 당시 윤 감독은 잠시 국가대표팀 자리를 내려놓고 알마티 실업팀을 지도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광저우아시안게임 후 대표팀을 다시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두 달 뒤 제13회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가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윤 감독은 이 대회에서 카자흐스탄 여자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해 결승에서 우리나라를 33-32 한 골 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윤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기고도 이긴 게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상 수성에 실패하며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고 그 상황이 오히려 나한테는 기회가 되었다는 상황에 기분이 참 묘했다"고 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경기가 끝나고 당시 감독을 맡았던 강재원 감독과 동문 후배인 코치들을 찾아 회포를 풀며 서로를 이해했다.
2014년 제19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는 카자흐스탄 여자주니어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다. 우리나라와는 같은조에 편성되어 28-42로 패했다. 당시 대회에서 카자흐스탄은 23위 결정전에서 콩고와 맞붙어 승부던지기 끝에 승리하며 2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윤 감독의 관심도 자연스레 우리나라 성적에 쏠리고 있었다. "우리 팀은 계속 졌다. 그래서 기분이 처질 법도 했지만 대한민국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결승전은 카자흐스탄 선수들이 있던 장소와 두 시간이나 차이가 있는 장소에서 열렸지만 윤 감독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장을 찾았다. 빨간 티셔츠를 구해서 선수들에게 입히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해외 지도자 생활을 하며 또 다른 희열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아시안게임이 폐막한지도 10여일. 윤 감독은 일주일가량 휴식 후 인도네시아 지역을 돌며 핸드볼 기술 강습과 지도자들에게는 훈련 강습법을 전파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원래 없던 계획이었는데 인도네시아의 열악한 핸드볼 환경에 윤 감독이 인도네시아핸드볼연맹에 제안했다. 윤 감독은 "누구보다 핸드볼로 혜택을 많이 받은 나다. 해외 생활을 하면 우리나라 핸드볼의 위상을 더욱 확실히 느낀다. 그로 인해 얻은 혜택을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전했다.
(본 콘텐츠는 핸드볼코리아 36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