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팀 코리아가 개최국인 독일과 개막전을 갖는 날입니다.
개막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바쁘고 뭔가 정신이 없어 보입니다. 아침 9시부터 IHF 본부 호텔에서 테크니컬 미팅이 진행됐고, 12시 30분부터는 선수들이 묵는 호텔 미팅룸에서 경기 룰에 대한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때보다 바쁜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맞이한 점심시간. 묵묵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백원철 코치의 깜짝 생일 파티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와서 두 번째 생일 파티입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베를린에서 흔치 않은 케이크가 등장했고, 선수단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잠시, 큰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뭔지 모를 무거움이 선수단 전체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올라가는 선수들의 뒷모습에서 묘한 긴장감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경기가 열리는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도착했습니다. 친절한 대회 관계자들의 안내 속에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향했고, 다른 지원 스태프들은 각자 맡은 업무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아직 경기 시작은 두 시간도 더 남았지만 경기장 안은 벌써 입장한 관중들로 요란한 상태입니다. 모든 좌석마다 독일 국기와 응원용 클래퍼가 놓여 있었습니다. 경기장 천정에 마련된 전광판에서 13,500명 전석이 매진이라는 문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큰 경기장이 관중들, 그것도 유료관중들로 꽉 차다니. 정말 부러웠습니다.
남북 합동응원단은 본부석 우측 골대 뒤쪽에 위치했습니다. 한반도기가 새겨진 하얀 단체 티가 멀리서도 금방 찾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00여 명 남짓한 응원단이었지만 응원 목소리만큼은 독일 관중에 못지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남북 합동응원단 구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정부 당국의 합의를 통한 응원단 구성은 1990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두 번째라고 합니다. 얼핏 보기엔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단일팀 국가, 국기, 응원곡, 응원구호 등 합의할 게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개막식이 시작되고, 드디어 개막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참가국 국기의 입장, 대회 공식 노래 라이브 공연, IHF 회장의 개막선언 등 잘 만든 한 편의 공연을 보는 듯했습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 선수들이 입장했습니다. 비록 20일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된 훈련을 함께 하며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서는데 저도 모르게 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고, 단일팀의 국가로 아리랑이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20명의 남북 선수들은 손을 마주 잡았고, 남북 합동응원단은 아리랑을 따라 불렀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 울려 퍼지는 아리랑. 그리고 아리랑을 따라 불렀던, 생생히 들려왔던 우리들의 육성. 벅찬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눈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위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보입니다.
모든 식전 행사가 끝이 나고, 드디어 핸드볼 단일팀의 첫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대회 경험이 있는 선수가 2명밖에 안 되는 점을 조영신 감독은 많이 걱정했는데, 역시나 선수들이 많이 긴장한 듯 보입니다. 우리의 선제골도 잠시, 순식간에 역전을 허용하고 독일이 앞서자, 선수들 스스로 ''천천히''를 외치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7분이 지나고, 북측의 리경송이 코트에 들어서자 응원단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점수 차는 계속해서 벌어졌지만, 응원단의 응원 목소리는 절대 작아지지 않았습니다. 코리아가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응원단에게 승패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나된 우리. 그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 열망을 잘 아는 듯 선수들은 코트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리경송이 패스를 놓치고 고개를 떨구자, 정수영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고 위로했습니다. 이것이 팀 코리아의 지난 20여 일간의 하나 된 모습일 것이며, 이는 남과 북의 핸드볼이 함께 하는 첫걸음일 뿐입니다.
교포 2세로 다른 교포 친구들과 경기장을 찾은 이건민(22) 씨는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선수들이 고생이 많았는데 우리 교포들에게도 큰 힘을 준다"고 감격해 했습니다. 할아버지 고향이 북한이라는 건민 씨는 "북측 사람들과 함께 응원해 너무 기쁘다"라며 "단일팀이 스포츠 행사이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북측에서 온 응원단 중에는 지난해 6월 베를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18주년 기념 및 판문점 선언 축하 행사에서 북측 합창단으로 나왔던 김진의(14) 군도 보였습니다.
1시간 반의 시간이 지나고 경기가 끝이 났습니다. 개막전 승자는 독일이었지만 코트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팀 코리아였습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남북 독일대사는 코트로 내려와 단일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격려했습니다.
취재진의 카메라도 코리아에 집중되었습니다. 조영신 감독과 세계대회에서 첫 골을 기록한 리경송이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19세이브를 기록한 박재용도 현지 취재진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큰 파도가 지나간 듯 11일 아침은 조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큰 경기를 치러서인지 다들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우리들만의 플레이를 했고 가능성을 본 것에 만족한 분위기였습니다. 가장 센 팀과 제일 먼저 붙은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조영신 감독은 회복 훈련에 앞에서 어제 경기를 평가하며 실수를 줄일 것을 당부했습니다. 훈련 후, 국내 언론의 취재에 응한 조영신 감독은 개막전 결과를 평가하며 “감독으로선 선전은 의미 없다. 너무너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한 순간 최선을 다해 경기하면 기대해 볼만하다는 자신감도 얻었다”며, “쉽게 무너질 수 있었는데 박재용의 선방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대학 1학년은 강탄의 과감한 플레이는 선배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북측 선수들에 대한 기용 폭도 넓힐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첫 숟가락을 떴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리아의 도전은 도전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 있는 도전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이상 베를린에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