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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옥의 핸드볼은 나의인생<4>유부녀 3인방과 후배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8.08.05
조회수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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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투혼이란 말, 별로 달갑지 않아요
연습 안 할 땐 오영란·허순영과 남편·자식 수다
팀 막내와 16살 차 … “체력 차 못 느끼게 더 뛸 것”

에뜨르, 아리아스.

서울 공릉동 태릉선수촌 근처의 커피숍들이다. 두 커피숍이 없었다면 나의 선수촌 생활은 무미건조 그 자체였을 것이다. 훈련과 휴식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과 속에서 이들 커피숍에서의 한 시간 수다는 나에게 효과만점인 피로 해소제다. 보통 나와 오영란(36·벽산건설), 허순영(33·덴마크 아르후스)이 함께 이들 커피숍을 찾곤 하는데 때로는 후배들을 데리고 가 6000원짜리 팥빙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나와 영란이, 순영이는 핸드볼 대표팀의 ‘유부녀 3인방’이다. 선수촌을 나와서는 핸드볼 얘기보다 주로 남편 얘기, 자식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와 영란이는 아들·딸 얘기를 주로 하고, 결혼한 지 몇 년 안 된 순영이는 남편 얘기를 많이 한다. 순영이는 아직도 깨가 쏟아지는 모양이다. 평소에도 덴마크와 부산에 서로 떨어져 살고, 귀국해서 대표팀에 합류한 뒤에는 남편 보는 날이 주말 하루뿐이니 왜 아니겠는가. 토요일 외출 때도 우리는 있는 옷 대충 주워 입고 나가지만 순영이는 이 옷 저 옷 입어 보고 설레는 눈치다. 선수촌에 돌아와 다시 훈련할 때엔 “순영이, 다리가 풀렸어”라며 시시덕거리기도 한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태극마크가 무거워도 태릉에 오고 싶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허순영은 오성옥·오영란과 함께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유부녀 3인방’이다. 사진은 허순영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덴마크와의 결승전에서 패한 뒤 오성옥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중앙포토]
우리 팀 막내에 김온아(20·벽산건설)라는 선수가 있다. 내 조카와 동갑이다. 나와는 16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나마 아줌마가 셋이나 되니까 “쟤도 있는데 뭐” 하며 버티는 거다. 얼마 전까지 나랑 함께 방을 쓰다가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유은희(18·벽산건설)는 막내보다 두 살이나 더 어리다. 나도 신세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얘들이 하는 말은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너희는 어디 가서 술 마시니” 하고 물었다가 “포차에서 마셔요” 하는 대답이 돌아와 난감한 적도 있었다. 포차가 ‘포장마차’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다.

이렇게 나이 차도 크고 하다 보니 임영철 감독님은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지난 금요일(1일)에는 훈련도 없애고 돈까지 쥐여주시며 “후배들 하고 같이 영화 보고 맛있는 거 사먹고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핸드볼팀 15명 전원이 상계동 롯데백화점에 총출동해 ‘님은 먼 곳에’를 봤다. 우리 예쁜 후배들도, 유부녀 3인방도 재미있게 본 걸 생각하면 세대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일까. ㅋㅋㅋ

어린 선수들과 운동하다 보면 내가 아줌마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줌마 투혼’ 이란 말이 별로 달갑지 않다. “기자님들, 이번 올림픽에서도 더 열심히 뛸 테니 아줌마 투혼이란 말 대신 ‘아줌마 같지 않게 누구보다 더 많이 뛰었다’고 써주세요.”

< 중앙일보  온누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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