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딴 선수들 못지않게 그들을 키워내고 지도했던 감독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금메달을 딴 야구의 김경문 감독과 박태환을 키운 수영의 노민상 감독, 그리고 암과 투병하면서도 선수들을 지도한 양궁의 문영철 감독 등이다. 그러나 금메달을 따는 데는 실패했지만 ‘우생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감동을 재현한 여자 핸드볼의 임영철(48) 감독은 단연 돋보인다.
흔히들 스포츠 지도자들을 평할 때 용장(勇將), 맹장(猛將), 지장(智將), 덕장(德將), 그리고 이들보다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운장(運將) 등으로 부르곤 한다. 그런 면에서 임 감독은 ‘용장’이나 ‘맹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훈련을 시키는 혹독한 지도자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임 감독에게는 ‘훈훈한 지도자’를 뜻하는 훈장(薰將)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붙게 됐다.
그는 올림픽 핸드볼 마지막 경기(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 종료 1분을 앞두고 작전 타임을 불렀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33-28로 이미 승부는 결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생방송된 임 감독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마지막 1분은 언니들 몫이다. 홍정호 오성옥 오영란…”등 노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리고 “너희들이 경기를 마무리하라”고 말했다. 올림픽무대가 마지막이 될 선수들을 출전시키기 위한 작전타임이었던 것이다.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언니들의 졸업식’이라고 말하며 눈물지었다. 훈련장에서는 독사처럼 무서웠던 감독이지만, 10년을 같이 뒹굴며 고락을 함께 했던 선수들에게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예우를 한 것이다.
여자 핸드볼 경기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최고 감동의 순간을 선사한 것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임 감독의 ‘배려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훈장’임영철 감독은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뒤 예상대로 이곳저곳의 환영 행사에 얼굴을 비치느라 바뻤다. 그리고 곧바로 소속팀(벽산건설)을 이끌고 무안군에서 열린 실업핸드볼대회에도 출전했다. 올림픽이 끝난 지 20여일이 지난 뒤에야 그를 조금은 편하게 만날 수 있었다. 임 감독이 지난 16일부터 2박3일간의 일정으로 강원 정선의 하이원리조트에 초청받아 선수들과 휴가를 가졌기 때문이다. 휴가의 반나절을 쪼개 시간을 내준 임 감독에게 또다시 ‘그때 그일’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코어가 많이 벌어지지 않았어도 노장 선수들에게 마지막 1분간을 맡기려 했느냐고….’
그는 “승부가 박빙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면서 “당시 내가 호명한 선수들은 4년 후에는 도저히 올림픽무대에 나설 수 없는 선수들이었죠. 그들의 올림픽무대를 벤치에서 끝내게 할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을 시작하면서 이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 6위전이 됐든, 7, 8위전이 됐든 마지막 1분은 아줌마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 했죠. 생애 마지막 올림픽인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들이 코트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올림픽 후 임 감독을 훈장이라고 부른다, 알고 있나.’
그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핸드볼 팬들이 농담 삼아 부르는 것을 들으면 싫지는 않습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아직은 ‘독장’이라 부르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지독하게 훈련시킨다는 평가가 생각났는 모양이다.
그는 “훈련에는 용서가 없어요. 경직될 수밖에 없고 부담스러운 대회에서는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하고, 그들에게 경기를 맡기는 편이지만 훈련만큼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지도 철학입니다. 인생 지침이기도 하고요. 모든 일에 ‘적당히’란 있을 수 없거든요. 선수들에게 항상 선수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적당히’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당히’는 곧 패배와 낙오를 뜻하니까요.”
올림픽 후 곧바로 실업대회를 치른 그에게 금세 식은 듯한 핸드볼 열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경기장이 썰렁하던데….’ 임 감독의 표정이 굳었다. 목소리도 조금은 격앙된 듯하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많은 언론들이 앞을 다퉈 전남 무안의 대회장을 지켜보고는 ‘썰렁했다’‘그들만의 경기였다’ 그리고 다시 ‘한데볼’이라면서 핸드볼을 비인기종목의 대표격으로 몰아붙이는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분명 경기장은 썰렁했고, 대회가 지방에서 열려 큰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끝났는데….’
“핸드볼인들은 무안에서 대회를 치를 수 있게 해준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워 하는데요.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의 체육관은 1년 전부터 대(貸)관이 끝난 상태입니다. 프로농구, 프로배구, 그리고 대관료를 많이 내는 일반 행사로 이미 경기장이 예약돼 있어 핸드볼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물론 올림픽 이후 전용경기장 건립을 계획하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약속했지만 각 자치단체와 스포츠 팬들의 인식이 바뀌기 전에는 핸드볼 활성화는 한계가 있어요.”
그렇다. 그가 격앙된 것은 ‘역설’이었다. 핸드볼 대회를 유치라도 해 준 지방자치단체가 ‘정말 고맙다’는….
그는 언론에도 부탁했다. 제발 ‘한데볼’이라는 표현으로 핸드볼을 비인기 종목으로 만들지 말라고….
임 감독은 “비인기 종목이란 올림픽무대나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없는 종목을 말합니다. 아직 많은 관중이 경기장에 찾을 여건이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여자 핸드볼은 물론 선수들 이름까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인데 어떻게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입니까”고 반문한다.
그는 “다만 핸드볼이 유럽에서 시작되고 그곳에서 인기가 높은 종목이라서 미국과 일본 경기(프로야구를 지목하는 것 같다)에 익숙한 우리 국민들에게 분위기를 띄우는데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계속 올림픽에 출전하고 좋은 성적을 이어간다면 인기 스포츠로 위치를 굳힐 것으로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조심스럽게 핸드볼의 프로화를 얘기하기도 했다. “당장 완전 프로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실업팀으로 각 팀을 정비하고, 행정력, 마케팅을 강화한다면 세미프로화해 인기 스포츠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유럽의 핸드볼 인기와 팀 운영을 참고한다면 우리도 지금의 분위기로는 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어쩔 수 없이 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데, 각 기업이 사회 환원 차원에서의 핸드볼팀을 창단하는 것이 프로화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다시 얘기를 올림픽으로 돌려봤다.
‘초등학생의 엄마도 있고, 30대 중반의 아줌마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혹사(?)라고 할 정도의 훈련을 어떻게 할 수 있었나.’
“만약 목표가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면 달콤한 열매(메달 또는 연금)가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는 올림픽 준비과정에 대해 “정상인으로는 하기 힘든 훈련량을 했죠. 정말 힘들었다면 선수들이 죽었겠지만 그 문턱까지는 갔었어요. 선수들이 목표의식을 갖고 힘든 훈련을 감내해준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는 “심판 판정과 같은 경기 외적인 요소로 인해 (승리를) 방해 받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며 노르웨이전의 오심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오심으로 결승 진출이 좌절된 후 선수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냐는 질문에 “나는 선수들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면서 “다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3~4위전에서 패해 4위를 하고 귀국했을 때 너희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만 했습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핸드볼 대표팀과 운영에 대해 그는 “열두 살 아이 엄마 오성옥, 핸드볼 부부 골키퍼 오영란, 7m 드로를 전담했던 홍정호, 대회직전 코뼈가 부러지고도 올림픽 이후로 수술을 미뤘던 허순영, 잦은 부상을 극복하고 끝까지 뛰어준 박정희 등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었죠. 이제는 스무살 김온아 같은 선수가 해주어야 합니다. 김온아는 이번 올림픽에서 많이 성장했죠. 앞으로 한국 여자 핸드볼을 짊어지고 나가야 합니다. 김온아는 앞으로 체중을 더 늘리고 파워를 길러야 실질적인 에이스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며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체육부장 kj59@munhwa.com
■임영철감독은…
▲1960년 서울 출생 ▲서울 미동초등학교 ▲연희중(1년부터 핸드볼 선수로 활동) ▲고려고 ▲1979년 원광대 ▲원광대 대학원 체육학 석사 ▲1983년 인천 부평서초등학교 코치로 지도자 생활 시작 ▲1984년 한국체육대 코치 ▲1989년 핸드볼 남자 국가대표 코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대표팀 코치 ▲1993년 종근당 감독 ▲1995년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 코치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감독(은메달) ▲2004년 효성건설 창단 감독 ▲2007년 5월 ~ 현재 핸드볼 여자 국가대표팀 감독 ▲2008년 벽산건설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