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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대한민국은 한 편의 영화에 거국적으로 감격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팀의 분투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 감격의 진원지였다. 그 후 영화에 대한 관심은 실제 선수들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갔고, 배우 김정은이 연기했던 해외파 감독의 실제 주인공인 임오경 감독 역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핸드볼에 입문했고, 한 달 만에 나간 대회에서 혼자 4골을 뽑아내면서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어린 선수 임오경은 결국 22살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6살에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그리고 34살에 영화 속 무대였던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선수촌 입촌 직전에 임신해서 올림픽행이 좌절되었지만, 지금까지 3번의 올림픽에서 투지를 보여준 선수다. 그리고 한국체대 졸업과 동시에 일본 히로시마의 메이플 레즈로 이적해 감독 겸 선수로 뛰며 정규 리그에서 팀을 여덟 차례나 정상에 올려놓은 실력파 감독이란 것이 그녀에 관해 알려진 사실들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못다 이룬 앙금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한국 핸드볼에 대한 생각이 많았죠. 일본에서 활동하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일본에서 제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을 놔둔 채 쉽게 떠나올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렇게 한 해 두 해 가다 보니 14년이 된 거예요. 동아시아 클럽대회에서 더블 스코어로 한국팀을 이기고, 히로시마 국제대회에서도 한국팀을 이기자 ‘이제 그만 한국으로 나오라’고 설득하는 분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생각을 굳히게 된 거죠.”
영화 <우생순>의 열풍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인 지난 7월, 결국 그녀는 14년 만에 정식으로 대한민국 핸드볼계에 재입성했다. 서울시청 여자 핸드볼팀을 창단해 감독직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온 그녀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반대로 시기하는 무리도 많았다고 한다. 그녀가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일본에서도 잘나가면서 왜 한국에 와 남의 밥줄을 빼앗으려고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다른 노장 감독들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는가 싶어 며칠씩 칩거하며 괴로워해야만 했다. 선수 시절에는 ‘근성 있다’고 칭찬받던 그녀의 완벽주의적 성격이 감독직을 수락하자 ‘독하다’는 비난의 이유가 되었던 것도 당황스런 기억이다.
그러나 핸드볼 코트 위에만 서면 눈빛이 180도 바뀌던 악바리 임오경은 힘든 시간을 용케 이겨내고 결국 다시 한 번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2008년을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보내고 있다. 현재 서울시청 핸드볼팀 선수는 모두 8명. 시합에는 7명이 선수로 뛰어야 하니 그 초라한 라인업으로 너무 성급하게 시작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녀는 이미 내년, 내후년까지 선수 영입 계획이 완료되어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뿐 흔들림이 없다. 그녀는 핸드볼계에서 임오경한테 지지 않기 위해 발바닥에 불붙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자신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피나는 노력을 더한다면 결국 한국 핸드볼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20년간 메달을 따온 효녀 종목이었지만 전용 경기장 하나 없이 관중석이 텅 빈 비인기 종목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 어쩌면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녀가 기대하는 바다. 자신 한 사람으로 인해 그런 변화가 찾아올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 같다는 게 그녀의 말이다.
성공이란 단어를 ‘자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며 거절하는 그녀는 어쩌면 성공 그 너머에 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강해 보이는 당신도 지칠 때가 있느냐’는 의구심 섞인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저도 인간이니까 당연히 지칠 때가 있죠. 하지만 아무리 지친다 해도 선수로서 제가 잘 뛰어 우리 팀이 이기는 게 좋았고, 지도자로서 잘 코치해 우리 선수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저로 인해 타인이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저는 강해지려고 노력한 적 없어요. 단지 제가 남들보다 희생하면 된다는 긍정적이고 편안한 마인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죠. 처음 일본에 가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 반벙어리처럼 두 달 동안 지냈을 때, 4살짜리 딸을 두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서 생이별해야 했을 때, 지치고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제가 왜 울었나 생각하고 다시 울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저 스스로에게 다짐했어요. 그래야 다시 웃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녀는 이제 내년 첫 번째 데뷔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핸드볼 큰잔치에 서울시청 감독으로 출사표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실업팀의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경기에 우승 욕심이 있는지 묻자, “나는 우승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선수와 감독이 진짜 하나가 되었을 때 우승해야 그것이 진짜다”라고 대답하는 그녀. 서울시청 핸드볼팀의 데뷔 무대가 한국 핸드볼에 긍정의 힘을 떨치는 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기획 안동선 | 포토그래퍼 코스모 폴리탄 | 코스모폴리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