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언니들의 졸업식’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시청자들도 한 편의 슬픈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같이 울었다.
임 감독은 올림픽 전 혹독한 훈련 방식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으로 용장(
勇將) 또는 맹장(
猛將)으로 통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훈훈한 지도자’를 뜻하는 ‘훈장(
薰將)’이라는 별칭을 새로 얻었다.
임 감독은 기자와 만나 “선수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없으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전문은 DBR 32호(5월 1일자)에 실린다.》
배고픈 사람이 배부른 느낌 만끽하면
배고픈게 어떤지 알기 때문에
배고프지 않기위해 기를 쓰기 마련―올림픽이 끝난 지 8개월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헝가리전의 감동적인 멘트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리 준비하셨나요.
“솔직히 며칠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힘든 훈련을 견뎌왔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제가 줄 것은 없고 애정이라도 표현해야겠다 싶어 준비했어요. 저도 제가 그 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1, 2점 차 박빙의 우위를 지키고 있었거나 지고 있었다면 못했을 겁니다. 뒤지고 있었다면 설사 제가 들어가라고 해도 선수들이 안 들어갔겠죠. 지는 경기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다행히 많은 점수 차로 이겨줘서 그 걱정을 덜었습니다.”
―일단 선수를 발탁하면 강한 신뢰를 보이는 걸로 유명합니다.
“1983년 코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 경기에서 우리 팀이 7m 드로 기회를 얻었습니다. 감독님은 A 선수가 던지기를 원했지만 제가 강력히 추천해 B 선수가 던졌어요. 골이 안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 7m 드로 기회가 또 생겼습니다. 역시 제가 강력히 주장해 그 선수가 던졌는데 또 안 들어갔어요.(웃음) B 선수가 바로 서울 올림픽에서 남자 핸드볼 금메달 획득에 큰 공을 세운 김재환 선수입니다.
당시 김 선수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어쩌다 한 번 준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고작 한두 번의 기회만 준 후, 그때 선수들이 못한다고 다시는 기용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발탁한 선수를 믿는다면 그 선수가 잠재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도 지도자의 임무입니다.”
―지도자로서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무엇입니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후 몬테네그로의 부두치노스트 클럽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때 유럽 핸드볼의 훈련 방법과 참고 자료를 접한 경험이 지금도 큰 재산입니다. 옛 유고 연방의 정치적 불안만 빼면 운동 환경은 좋았습니다. 제가 여자 실업팀을 맡았는데, 실업팀(시니어) 산하에 주니어-청소년-유소년 팀이 차례로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거죠.
물론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처음 도착하니 선수들이 하루에 1시간만 운동을 하더군요. 어이가 없어 훈련 시간을 1시간 30분으로 늘렸는데, 다음 날 훈련장에 갔더니 주전 선수 중 3명만 있었습니다. 현지인 코치가 와서 선수들이 파업에 들어갔다고 알려주더군요. 이런 감독 밑에서는 선수 생활 못하겠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클럽 회장이 어떻게 수습할 거냐고 묻기에 ‘난 내 식대로 한다. 주니어 선수 중 유망주들을 뽑아 경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1주일 후에 몬테네그로 리그가 시작되는 상황이라 속으로는 저도 많이 초조했어요.
다행히 주니어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 첫 3주 동안 열린 9번의 경기를 모두 이겼습니다. 한 달이 지나니 주장부터 숙이고 들어오더군요. 제가 말했습니다. ‘좋다. 너희들을 받아준다. 그 대신 훈련은 2시간이다.’ 나중에는 그 2시간도 2시간 30분으로 늘렸습니다.(웃음) 엉겁결에 발탁된 주니어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늘어 주전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더군요. 성적요? 제가 맡기 전 유럽 핸드볼리그에서 8강에 올랐던 팀이 그 해에는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유럽 핸드볼은 어떤 점이 달랐습니까.
“여자 선수들의 연습이 끝나면 일부러 남자 클럽 팀 뒤에서 남자 선수들의 연습을 지켜봤습니다. ‘저 패스를 뭐 하러 연습하나’ 싶은 이상한 패스를 하고, 체력 훈련 방식도 매우 독특하더군요. 한마디로 훈련 자체가 매우 창의적이었죠. 당시 한국 선수들의 체력 훈련은 고작 12분 달리기 정도였어요. 하지만 스피드 지구력 훈련(셔틀런)을 포함한 다양한 체력 훈련을 보고 나니, 새삼 체력의 중요성을 알겠더군요.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도 강력한 체력 훈련을 바탕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것 아닙니까.”
―올 2월 핸드볼 큰잔치 개막 경기에서 제자였던 임오경 감독에게 승리하셨죠. 경기 후 임 감독에게 “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하셔서 화제가 됐는데요.
“임 감독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 핸드볼 스타였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간 후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계속 승승장구했죠. 배가 부른 사람은 원래부터 배고픈 느낌을 모릅니다. 하지만 한때 배고팠던 사람이 배부른 느낌을 만끽하면, 배고플 때가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다시는 배고프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한국 핸드볼을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말고, 배고픈 느낌을 계속 간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조언입니다.”
○ 임영철 감독은 누구?고려고, 원광대를 졸업하고 1983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핸드볼 대표팀 코치, 1995년부터 여자 핸드볼 국가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애틀랜타부터 베이징까지 4번의 올림픽을 치르며 한국 여자 핸드볼을 세계 정상권에 올려놨다. 그가 이끄는 벽산건설은 2008, 2009년 2년 연속 핸드볼 큰잔치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하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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