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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핸드볼] 생활체육 핸드볼, 전국 연합 가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6.09
조회수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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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힘이 다 빠질때 즈음해서 지난 15년 동안 공을 들여 온 전국 연합에 가입이 확정되었습니다.

고맙고 반갑기 이를데 없는 일이지만 또한편 약간은 허탈하기도 합니다.

그 동안 너무 애타게 기다렸던 탓일까요?

 

1995년에 서울대와 한국 외대 졸업생 몇몇이 모여, 우리같은 대학 2부 리그 선수들이 꼭 해야 할 일은

생활체육 핸드볼 운동을 전개하여 핸드볼 동호인들 수를 늘려 나가는 일이라는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 해 가을에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제 1회 대회를 개최했고,  지금 뉴질랜드에 가 있는 김 순숙씨를

비롯한 몇몇의 예전 여자 선수들이 그때 합류하여 힘을 보태 주었습니다.

첫 대회때는 17팀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뤘었고 그때의 우리들 생각은, \"핸드볼 동창회\" 를 하는 기분으로

예전의 동료였고 또 라이벌이었기도 한 옛 친구들을 1년에 두번씩  한자리에 모아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핸드볼 잔치를 하면서 서서히 동호인들을  늘려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대회명칭도 \"생활체육\" 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했고, 대신 \"사회체육\" 이라는 다소 애매한 명칭을 걸고

경기를 했었지요.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 생활체육 핸드볼인들이 해 온 일들은,

*매년 2회씩 생활체육 핸드볼 대회 개최.

*1996년, 남자 동호인팀의 중국 원정 경기(북경)

*1997년, 남.녀 한국 핸드볼 동호인팀 일본 원정경기(일본 동경, 오사키 전기팀과의 교류)

*1997년, 일본 무사시 클럽 여자팀의 한국 방문 경기

*1999년, 서울시 생활체육 핸드볼 연합회 결성 --- 창립 총회

*2000년, 일본 구마모토에 올림픽 예선전 응원단 파견 및 오므론팀과 친선경기(48명)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단체 응원단 파견(44명)

*2001년, \"생활체육 핸드볼 세미나\"를 한국 여성 스포츠회와 공동으로 개최.

*2001년, 불우 이웃 돕기 운동( 노원구 중계동 아동 보육원 방문 : 금일봉, 의류,생활용품,문구류 전달)

*2002년. 인천광역시 핸드볼 연합회 결성

*2003년, 전라북도 핸드볼 연합회 결성

*2004년, 전국연합회 결성을 위한 창립총회 (인정단체로 등록)

*2007년, 제주시 핸드볼 연합회 결성

*2009년, 국민 생활 체육 협의회에 준회원으로 가입 완료.(2009년 5월)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무슨 압력 단체를 만든다는 오해도 받았었고, 이일을 반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훼방도 있었고, 체육관을 빌리는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중에는

대충 대충 장난으로 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판들조차 심판복을 안 입고 츄리닝 차림으로

심판을 보던 사람들도 있었으며, 술을 마시고 경기에 임해 결국은 문제를 일으킨 일들,

선수들 기념품을 슬쩍해 가서 대회 준비를 한 임원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람, 심지어 심판판정을

장난으로 해서 문제를 일으킨 사건 등등 수도없이 많은 어려움과 또 한편 즐거움을 겪으면서

우리는 이 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생각은 나지 않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핸드볼 저변확대와 발전을 위해

많은 사업들을 벌여 온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이 곳 핸아사의 안 민영씨와 많은

대화를 통해 핸드볼 발전을 위한 의견을 주고 받기도 했지요.

이 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 인정단체\" 에서, 이번에 결정된 \"준회원단체\"가 되면 많은것들이 달라집니다.

우선 직원 1명의 급여를 생활체육 협의회에서 받게 됩니다. 이것은, 생활체육 핸드볼의 저변확대와

발전을 위해 직원 1명이 전담으로 일을 하게 된다는것이지요. 아무리 핸드볼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싶어도, 일단은 생계가 해결되고 난 후의 일인것은 피할수 없는 현실인데 앞으로는

그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당장은 아니지만 조만간 작은 사무실을 하나 제공받게

됩니다. 이것도 생체협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또한 매 대회때마다, 전체 대회 경비의 일부를 지원받을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씩은 보다 나은

조건하에서 대회를 치를수 있게되는것을 뜻하지요.

은퇴선수들이 핸드볼교실을 열면 한 지역당 두명의 강사에게 일정액의 보조금과 체육관 사용료를

지불하기도 합니다.(서울과 인천에서 이미 시작) 또한 이때 필요한 \"볼\"들을 지원도 해줍니다.

 

지난 달 하순, 생체협의 요청을 받고 약 30 페이지 분량의 입회용 서류를 부랴부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월 21일, 생체협의 내.외 심사위원들 앞에서 핸드볼의 생체협 가입을 위한 브리핑 기회를

가졌습니다. 생활 체육 핸드볼의 발자취와 그 동안 우리가 벌여온 사업들, 왜 핸드볼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또 지원을 받으면 어느 정도 더 국민들에게 가까히 갈 수있는지 등등을

이해 시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선 이틀뒤 구두로 가입이 결정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못 미더워

공식 서류를 받기 전까지는 일절 입밖에 내지도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김이 빠져 일이 또 성사되지

않을까봐 조바심이 났지요.그 동안 여러번에 걸쳐 가입이 좌절되어 왔기에  이번에도 그럴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곤 어제 공식적인 가입허가를 팩스로 받았습니다.

 

15년이 걸렸네요!!!!!!

 

너무나 오랫 동안을 기다려 와서인지 또 최근에 와서는 그 의욕을 거의 상실해서인지

그 동안 그리도 기다리던 일이 성사가 되었는데도 기운이 나기는 커녕 오히려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느낌입니다. 조금은 허탈한 기분도 들고요.

그래도 좋은 일, 신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이 일을 계기로 핸드볼의 저변 확대와 더 많은 동호인들이 생기는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제까지 이  생활 체육 핸드볼의 발전을 위해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앞장서 준 많은 분들이

생각납니다. 어렵고 또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보태주신  여러분들께 이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자기것 하나 챙기지 않고 순수하게 핸드볼을 위해 앞장서 뛰어주신 여러분들이야말로

정말 멋진 핸드볼인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두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냥 지금 생각나는대로 고마운 이름들을 적어 봅니다.

 

서울대 출신 진 성룡 선생님.

한국 외대 출신 박 완균 사장님,

여성 핸드볼인들의 참가를 위해 앞서 뛰어주신 김 순숙님, 양 현순님, 김 인자님, 전 란숙님,배 승남님,김 정미님,

조 은희님, 박 정림님, 김 지은님, 김 경숙님, 이 은미님,김 경순님,그리고 한국 여성 스포츠회의 정 현숙님.

또 옛 인천시청, 조페공사 ,진주햄,등등에서 나이를 잊고 참가해 준 여러분들 등등.

강 태구님, 김 종순님, 임 규하님, 김 운학님, 박 종하님, 임 명길님, 강 인구님,  김 상석님, 장 면호님, 서 성혁님,

양 유찬님, 조 남원님, 차 성복님,

 

우리 핸드볼의 최고 어른이신 김 종하 회장님, 원로 맹 정술님,박 천조님, 이 봉일님, 고 병훈님.

그리고 작고하신, 일생을 핸드볼 발전을 위해 일해주신 고 홍 순태 선생님.

모두가 생각나지는 않아서 죄송할 따름이만, 진정 핸드볼 발전을 위해 큰 힘이 되어주신 분들이기에

이 기회에 존경하는 마음을 올립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핸드볼이 조금이나마 더 발전하고,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Peter

<출처 - 핸드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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