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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안의 ‘우생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06.15
조회수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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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초 핸드볼 “훈련장 없고 잘 못 먹어도 … 은메달 땄어요”

올 소년체전서 은메달을 딴 천안 성정초 여자 핸드볼부. 남의 학교를 빌려 훈련하는 처지지만 내년에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의지가 드높다. 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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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핸드볼 선수인 한채연(13)양. 천안성정초등학교에 다니는 채연이는 집(두정동)에서 학교까지 50분이나 걸려 등교한다. 학교 근처에서 살던 채연이는 가정형편 때문에 얼마 전 이사 가면서 등교시간이 길어졌다. 채연이는 키가 150㎝지만 몸무게는 40㎏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작년에 5㎏ 늘었다. 운동선수에게 몸무게는 생명과도 같다. 채연이는 팔·다리가 길고 운동신경도 뛰어나 기대주로 평가 받았지만 몸무게 때문에 애를 태웠다. 보다 못한 남승우(38) 지도교사가 핸드볼부 예산을 쪼개 채연이에게 보약을 달여 먹였다. 빠듯한 살림에 고민하다 서미경(32) 코치와 상의 끝에 보약을 먹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채연이는 최근 열린 소년체전에서 맹활약했다.

#2 김지연(12)양은 자매 핸드볼 선수다. 천안여중 2학년에 다니는 언니 역시 성정초에서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자매의 꿈은 ‘핸드볼 국가대표’다. 지연이 부모는 “예쁘게 딸을 키우고 싶다. 운동을 시키기엔 가정 형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운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친 남승우 교사와 서미경 코치의 설득으로 겨우 허락했다. 지연이는 5학년 가운데 유일한 주전선수다. 지연이가 없으면 베스트 멤버 짜기도 어렵다.

성정초는 이달 초 열린 제38회 소년체전 핸드볼 여자초등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년체전 최고의 주인공은 단연 성정초였다. 결승전에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의 감동이 재현됐다. 애초 학교와 가족들은 ‘4강만 가도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직전 대회선 예선 탈락한 데다 최근 6년간 한 번도 메달권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8일 오후 2시30분 천안공고 체육관. 어제의 ‘은메달 영광’을 뒤로 한 채 학생들 10여 명이 연습을 위해 줄지어 들어섰다. 꿈 많은 초등학교 5~6학년 여학생들.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기보다 큰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았다. 서너 명은 공에 왁스를 칠했다. 왁스를 칠하지 않으면 공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시커멓게 때가 묻은 얼굴 만한 핸드볼 공은 그들에겐 컴퓨터나 게임기보다 친한 친구다.

어린 선수들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볼 스피드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빠르다. 훈련 중간 잠깐 골대에 선 기자가 선수들이 던진 페널티 슈팅을 막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공을 뺏으려 쫓아가면 금세 멀리 달아났다. 경기장에선 더 빠르다고 했다.

이날 연습엔 한현정(12)양이 합류해 더 힘이 났다. 얼마 전까지 선수였던 현정이는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운동을 그만뒀다 은메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모님 앞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핸드볼을 못 하게 하면 큰 일(가출)을 낼 것”이라고 했다. 현정이는 “4학년 때 처음 시작한 핸드볼을 부모님의 반대로 그만뒀지만 꿈 속에서도 공을 던질 만큼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정초 핸드볼선수단은 12명이다. 5학년이 6명, 6학년이 6명이다. 내년을 위해서는 4학년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데 여의치가 않다. 남승우 교사, 서미경 코치의 최대 고민이 바로 ‘선수 선발’이다.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인데다 여학생이라서 부모들의 반대가 다른 종목보다 심하다. 매년 겪는 과정이지만 두 사람은 밤잠을 못 이룰 정도다.

성정초 핸드볼부는 고정 훈련장이 없다. 돌아다니며 ‘동냥 훈련’을 한다. 주로 천안공고 체육관을 빌리지만 행사가 있으면 인근 천안서초등학교 체육관을 빌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차를 타고 10~20분씩 이동한다. 차는 남승우 지도교사와 서미경 코치의 개인차량이다. 미니버스·승합차가 없어 훈련은 고사하고 대회 출전 때도 승용차 두 대로 움직인다. 12명의 선수와 지도교사·코치에다 장비까지 싣고 나면 승용차는 콩나물 시루다. 이렇게 4~5시간을 달려 대회가 열리는 곳에 가면 경기 시작 전에 녹초가 되기 일쑤다. 충남교육청은 성정초 체육관 건립을 위해 11억원을 배정했지만 이 돈으론 핸드볼 규격경기장을 짓기가 어렵다.

먹는 것도 문제다. 운동선수는 체력이 기본인데. 12명 선수 모두가 가정형편 때문에 고기 먹기가 힘들다. 핸드볼부 예산으로 일주일에 한 번 삼계탕 먹는 게 전부다. 운동 중 간식이나 이온음료는 생각도 못한다. 선수들은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란다. 대회를 앞두곤 하루 한 번 정도 고기를 먹어야 한다. 체력 관리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남 교사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주머니 터는 것도 한계가 있어 막막할 때가 많다”고 했다.

성정초 핸드볼부는 학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늘 부족하다. 교육청 지원도 한계가 있다. 지역 기업 및 시민들의 후원과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 중앙일보  신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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