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고 힘 달리는 한국 핸드볼이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비결은 바로 머리죠, 머리!" 남자핸드볼대표팀이 아시아 핸드볼선수권대회(2월 6일·레바논)를 앞두고 훈련 중이던 지난 25일 태릉선수촌. 조영신(43) 대표팀 감독은 "몸싸움이 심한 핸드볼에서도 승부를 가르는 것은 머리싸움"이라고 강조했다.
핸드볼 경기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공격수들은 가로 3m·세로 2m의 직사각형 골대를 공략하는 나름의 습성이 있다. 골키퍼에게도 강한 코스와 약한 코스가 있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핸드볼에서 머리싸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한국 핸드볼이 본고장 유럽에서도 교과서 대접을 받아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은 그간 스피드와 두뇌회전만큼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힘의 유럽세가 세기(細技)까지 갖추자, 대한핸드볼협회는 올해 핸드볼큰잔치에서 한국체대 측정평가팀을 동원해 국내대회 사상 처음으로 전 경기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하는 '데이터 핸드볼'을 가동했다. 이 데이터는 당장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서는 대표팀의 훈련과 앞으로 경기력 향상에도 적극 활용될 계획이다.

▲ 슈팅이 이뤄지는 찰나, 골키퍼와 공격수 간 치열한 머리싸움이 전개된다. 골키퍼는 데이터로 분석한 공격수 성향에 따라 방향을 예측하고, 공격수는 자기 습관을 역이용하기도 한다. 사진은 지난 19일 핸드볼 큰잔치에서 골키퍼 강일구(인천도시개발공 사)가 박중규(두산)의 슈팅을 방어하는 모습./연합뉴스
■공포의 0.1초를 분석하라
핸드볼 경기를 지켜보면 핸드볼 슈팅은 막는다기보다 어쩌다 골키퍼 몸에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격수들은 골문 앞 6m 슈팅라인에서 떠올라 2~3m를 날아간 뒤 슈팅을 한다. 최고 시속 100㎞가 넘는 이 슈팅을 골키퍼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공포의 0.1초'라고 하는 찰나다.하지만 세계 정상급 골키퍼 강일구(34·인천도시개발공사)는 온몸으로 전체 슈팅의 절반 가까이 막아냈다.
핸드볼 큰잔치 유효 슈팅 방어율 1위(44.1%·177개 중 78개 방어)인 그였다. 강일구는 "공을 보고 막으면 이미 늦다"며 "예측과 순간의 감(感)으로 막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감은 그러나 철저히 강일구의 머릿속에 저장된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그는 상대 공격수가 평소 골문 어디를 공략하는지, 헛동작을 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까지 세밀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골키퍼만 머리를 쓰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윤경신의 비결
핸드볼 큰잔치 득점왕(39점)을 차지한 윤경신(37·두산)은 세계 핸드볼 선수권 득점왕 출신이다. 큰 키(2m3)에 유연한 몸을 갖춰, 유럽의 하드웨어에 한국 핸드볼의 소프트웨어를 갖춘 선수로 통한다.
1996년부터 12년간 독일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윤경신은 "독일에서도 분석의 힘으로 7번 득점왕을 차지했다"며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루 2시간은 골키퍼들의 약점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의 슈팅 68개 중 40개가 골대 위쪽을 향했고, 바닥 쪽을 노린 것은 10개에 불과했다. "키가 너무 큰 탓에 아래로 깔리는 바운드 슈팅을 잘 못 쏜다"는 것이 윤경신의 설명이었다.
당연히 상대 골키퍼들도 이를 알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윤경신의 위쪽 슈팅 성공률(57.5%)이 아래쪽(80%)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왼쪽 측면 공격수(LW·레프트윙) 김태완(30·충남도청)도 철저하게 골대 위쪽을 공략(총 19개 슈팅 중 9개)했다. 1개의 슈팅만이 골대 아래쪽을 향했다. 반면 센터백(CB) 정의경(25·두산)은 아래쪽 슈팅이 주무기다.
핸드볼협회는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만날 상대 분석에도 적극 이용할 생각이다. 컴퓨터를 동원한 분석 시스템은 유럽 최강 독일과 덴마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헝그리 정신과 투지의 드라마를 써온 한국 핸드볼이 새로운 활로를 '분석'에서 찾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정세영 기자 jungs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