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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던졌지만 고작 ‘한 골’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0.02.10
조회수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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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m 라인 너무 멀고
골대는 작아보이고
골키퍼에 막혀도
속공맛은 ‘짜릿’


나도 해볼까 ‘핸드볼’

지난달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2010 핸드볼큰잔치 남녀 결승전이 끝난 뒤 또 경기가 펼쳐졌다. 대한핸드볼협회 임원들과 언론사 핸드볼 담당 기자들의 친선 핸드볼 경기였다. 전·후반 15분씩 30분, 그리고 전·후반 3분씩 6분의 연장전. 그 36분은 핸드볼을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 연습하다 지치고 저녁 6시. 체육관 바깥 날씨는 을씨년스러웠다. 종일 찌푸리더니 추적추적 겨울비까지 내렸다. 하지만 체육관 안 풍경은 사뭇 달랐다. 기자들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럼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분위기였다. 등번호 3번. 반소매와 반바지 파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나는 육탄전도 예상해 안경을 벗고 콘택트 렌즈를 낀 채 코트에 나섰다.

핸드볼 코트(길이 40m·폭 20m)는 농구 코트(길이 28m·폭 15m)보다 넓다. 몸을 풀었다. 우선 던지고 받기. 이성호 휘경여중 감독이 “공을 던질 때는 팔을 되도록 높이 들고, 받을 때는 두 손으로 가슴 쪽으로 당기면서 받으라”고 귀띔했다. 이번엔 슈팅 연습. 9m 라인은 너무 멀었다. 6m 라인에서 던지고서야 몇 차례 골 그물을 흔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작도 하기 전에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입은 벌어져 헉헉댔고,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 나왔다.


■ 골키퍼에 막힌 속공 야구의 외야수, 미식축구의 와이드리시버처럼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공을 향해 달려갔다. 골키퍼가 길게 던져준 공이다. 공을 낚아채는 순간 온몸이 짜릿했다. 상대는 채 수비 전형을 갖추기 전이었다. ‘이제 돌아서면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겠지.’ 오산이었다. 돌아서서 드리블하는 순간, 상대 골키퍼는 잽싸게 내 공을 가로챘다.

그 뒤에도 굴욕은 계속됐다. 거푸 속공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공을 놓치거나 골키퍼에게 막히기 일쑤였다. 상대 골키퍼는 김진수 협회 부회장. 슛을 쏘면 큰 대(大)자 모양으로 사지를 쫙 벌려 점프하는 그의 손이나 발을 맞고 튀어나왔다. 축구의 페널티킥과 같은 7m 던지기도 막아냈다. 높이 2m, 폭 3m의 골문이 왜 그리 좁아 보이던지 …. 시간이 갈수록 슛을 던지는 오른팔은 축축 처졌다.

10개 가까운 슈팅을 던져 딱 한 골을 넣었다. 골이 들어가지 않을 때는 동료들 보기가 민망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속공의 묘미에 빠져 공격을 멈출 수가 없었다.


■ 고통을 부른 과욕 다들 헉헉대더니 공격이 실패하면 수비하러 오질 못했다. 어느새 축구처럼 공격수와 수비수가 나눠졌다. 내가 자꾸 슛을 던지니까 상대팀 김옥화 이사가 나를 아예 맨투맨으로 막았다. 그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여자팀 은메달의 주역이다. 2004 아테네와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대표팀 임영철 감독과 이춘삼 남자청소년대표팀 감독 등은 현란한 드리블과 패스로 우리 팀의 혼을 빼놨다.

연장전 끝에 15-14, 1골 차이로 우리가 이겼다. 아니 상대팀이 져줬다는 게 맞다. 거의 풀타임으로 뛴 나는 경기가 끝난 뒤 그대로 코트에 길게 누웠다.

핸드볼은 축구처럼 골문과 골문 사이를 뛰어다니고, 야구처럼 공을 던지고 받고, 농구처럼 드리블을 한다. 또 슛을 쏠 때 팔의 궤적은 배구의 스파이크와 같고, 거친 몸싸움은 럭비와 흡사하다. 그래서 핸드볼을 종합스포츠라고 한다. 나는 다음날 그 말을 실감했다. 잘 쓰지 않던 근육을 골고루 썼더니 어깨부터 허리, 허벅지, 종아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나고 나니 고통은 짧았다. 그리고 그 날의 즐거움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 핸드볼을 하려면 핸드볼 클럽팀은 전국적으로 50여개, 동호인은 1000명 가량 된다. 지난해 11월엔 제1회 국민생활체육연합회장기 전국핸드볼대회도 열렸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국민생활체육전국핸드볼연합회 카페(http://cafe.daum.net/khandball) 게시판을 통해 가입하면 된다.


[한겨레]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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