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독일 함부르크 차상엽 특파원]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에서 12년째를 맞고 있는 함부르크 SV 소속의 윤경신(34).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6일 새벽(한국시간) 함부르크에서 열린 ZTR 사포로체와의 챔피언스리그 1차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였다.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조 1위로 2차 조별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경신은 이날 후반 10분이 경과될 무렵까지 거의 풀타임으로 경기에 출장한 뒤 벤치로 물러났다. 총 7골을 기록해 팀 동료 한스 린트베르크와 함께 최다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경기 결과는 38-23으로 함부르크의 대승.
경기 후 경기장내 라커룸 옆에 위치한 홀에서 선수들과 가족, 임원 등을 위한 간단한 식사가 마련됐고 윤경신과의 인터뷰도 바로 이 자리에서 진행됐다. "쉽게 이긴 경기에서 나이도 많은 나를 왜 이렇게 오래 뛰게했지"라며 장난스럽게 말문을 연 윤경신의 말처럼 이날 경기는 함부르크의 완승이었다.
사실 이날 경기는 윤경신의 말대로 40분이나 뛸 필요가 없었다. 상대팀의 전력이 크게 떨어졌고 함부르크는 이미 전반에만 20-7로 앞서나가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일주일간 3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탓에 팀내 2번째로 나이가 많은 윤경신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될만한 경기였다. 하지만 윤경신은 전혀 지친 기색이나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독일 무대에서 12시즌째를 맞는 윤경신에게 올시즌은 독일 생활을 마감하는 아듀 시즌이다. 8번이나 득점왕에 올랐고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한 '살아있는 전설' 윤경신은 올시즌이 분데스리가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라고 확실하게 못박았다. "현 소속팀에서 1년 연장 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2년은 선수로 더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에서 2년간 선수로 뛰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 윤경신의 답변이다.
윤경신은 "한국에 들어가 2년정도 현역으로 더 활동하면서 그와 병행해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독일에 처음 진출할 당시에는 2~3년 정도만 프로 선수로 활약하고 그 다음에는 스포츠 대학교로 유명한 쾰른에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 소속팀 VfL 굼머스바흐가 재정 위기에 빠지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지금까지 오게됐다고.
윤경신은 지난 2006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예선 당시 중동 심판들의 어이없는 판정에 대해 비교적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 두번도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됐던 문제인 만큼 이제는 오히려 화가 나지도 않는단다. 하지만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경기설 등을 상기시키며 "혹 재경기가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판정 논란 당시 '핸드볼을 해온 것이 실망스럽다'라는 체념섞인 발언을 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어느정도 초월한 모습이다.
또 윤경신은 열광적인 관중들과 독일에 머문 오랜 기간 만큼이나 많이 정들었던 동료, 지인들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국내에 복귀한다 해도 갑자기 핸드볼이 중흥하지는 않을 것을 잘 안다"라는 솔직하게 밝혔다. 그러면서도 "작은 부분이나마 핸드볼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핸드볼 발전을 위해서는 전도 유망한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활동을 통해 핸드볼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높이고 언론에도 자주 홍보를 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승엽을 예로 들며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팬들이 야구선수 이승엽 뿐만 아니라 야구에 대한 관심 자체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10년 이상 타지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을 만큼 정든 독일이다, 윤경신은 독일 입성 초기 어려움이 많았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자신을 위해 헌신적으로 내조했던 부인에게 항상 미안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면 내가 본격적으로 외조를 해야할 차례"라며 독일에서의 성공이 결코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부인이 그동안 너무 오래 쉬어 다시 일을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힘껏 돕고 싶다“는 윤경신이다.
다음은 윤경신과의 일문일답.
- 독일 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번 시즌이 현역으로서의 마지막이라고 밝혔는데 올시즌이 진짜로 마지막 시즌인가"독일에서는 마지막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복귀해 2년 정도는 더 현역으로 뛸 계획이다. 현재 소속팀인 HSV에서 연장계약 제의가 들어왔지만 현재 나이가 나이인 만큼(웃음) 2년이 아닌 1년간의 조건이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했다. 한국으로 복귀해서는 현역 생활 외에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쪽으로도 공부를 하고 싶다"
- 한국에서 활약할 팀은 이미 결정이 됐는가"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내 행선지를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단계적으로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곧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 한국 핸드볼의 기반이 매우 약해 많은 후배들이 유럽이나 일본 등으로 진출을 많이 하는 상황이다.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찬성하는 편인가"일단 한국 내 핸드볼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만큼 기회만 된다면 선수들이 많이 해외에 진출해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지고 먼저 활성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활동을 한다면 핸드볼에 대한 관심도 조금은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 한국으로 돌아가 현역 생활을 조금 더 하려는 이유도 국내 핸드볼 중흥이라는 목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핸드볼 자체가 야구나 축구 같은 종목들에 비해 홍보가 많이 부족한 것도 비인기 종목에 머물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라고 본다. 이승엽 선수의 예를 든다면 이승엽 선수가 야구를 하는 장면은 많은 팬들이 손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경기하는 모습이 아니라도 관심이 있는 팬들이라면 쉽게 이승엽 선수에게로의 접근이 용이하다. 적극적인 홍보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 10여년간 정든 굼머스바흐를 떠나 지난시즌 함부르크로 이적했다. 당시 ’우승을 위해서’라는 이적의 변을 밝혔는데 올시즌 우승이 가능한가(함부르크는 올시즌 13라운드 종료 현재 공동 선두권을 형성 중)"현재 성적이 워낙 좋고 팀 분위기도 좋아 기분상으로는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챔피언스리그와 포칼(독일컵) 등 3개 대회를 동시에 치르고 있어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에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개 대회중 적어도 1개는 우승을 꼭 차지해 선수 생활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
- 최근 최강 클럽인 THW 킬을 상대로 원정에서 종료 1초전 역전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기도 했는데 당시 기분과 현역 생활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면"당시 굼머스바흐 시절을 포함해 12년만에 처음으로 킬 원정경기에서 승리했던 경기였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골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시즌 챔피언스컵 위너스컵(유럽에서는 핸드볼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EHF 챔피언스리그, EHF컵, 컵 위너스컵 등과 같은 대회들이 있음) 결승전 당시 스페인팀과의 원정경기에서 경기 종료 2초를 남기고 넣었던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골로 함부르크는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힘겹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독일 와서 처음으로 차지한 우승이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예선 등에서 나온 중동심판 편파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최근 있었던 2006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예선은 물론 그 이전부터 중동팀들과의 경기는 계속 문제가 있었다. 대회 기간 중 화도 많이 났고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지속적으로 반복되다보니 오히려 초월한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경기가 열릴 수도 있다는 말이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던 경기였던 만큼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1년 세계 올해의 선수, 분데스리가 득점왕 8차례, 컵위너스컵 우승 등 리가 우승을 빼고는 현역 선수로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뤘다. 은퇴 이후, 즉 선수가 아닌 일반인 윤경신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아직 한국에서 2년간은 더 선수 생활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단은 우선은 그 일을 열심히 할 예정이다. 내가 뛰어서 한국 핸드볼이 크게 중흥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팬들을 불러모으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다음에는 해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Nick’이라는 애칭이 마음에 드는가(’nicken’은 고개를 끄덕이다라는 뜻의 독일어로 독일 진출 당시 굼머스바흐의 감독이던 하이너 브란트<현 독일 대표팀 감독>가 항상 예의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윤경신에게 직접 붙여준 별명)"독일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웃었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별명이다. 처음으로 해외에 나와 모르는 것이 당연했고 고생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지만 친근한 뜻으로 별명을 붙여주고 관심을 보여줘 큰 도움이 됐다"
-독일 진출 초기 당시 부인도 많이 힘들어했을텐데"난 그래도 정기적으로 훈련하고 경기를 갖는 것은 물론 가끔은 동료들과 만남도 가졌다. 하지만 나에 비해 와이프가 적응에 굉장히 힘들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많이 나아졌지만 그 전에는 많이 외로워했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유명 모 의상실에서 일했을 정도로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무료한 외국 생활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면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 다시 일을 하고 싶어하는데 오래 쉬었기 때문에 쉬울 것 같지는 않다. 때문에 이제는 내가 와이프를 위해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 여가시간에는 주로 뭘하는가? 교민들과는 자주 만나는지"특별히 정기적으로 무엇을 하는 일은 없다. 와이프가 교인이기 때문에 가끔 한인 교회를 통해 교민들을 만나는 정도지만 특별히 자주 만날 일은 많지 않은 편이다. 굼머스바흐 시절 초기에는 독일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일부러 한국 사람들과는 많이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처음 독일에 입성할 때 개인적으로 목표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렇게까지 오래 뛰면서 큰 활약을 할 것으로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가"처음 독일에 올 때는 솔직히 2~3년 정도만 프로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는 스포츠 관련 대학으로 유명한 쾰른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굼머스바흐가 한때 재정이 그리 좋지 못해 문제들이 조금 있었고 팀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결과적으로 많은 것들을 이루며 이 자리까지 왔지만 아직 리가 우승을 못해봤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고 싶다"
-독일 생활을 10년 이상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독일 생활 중 그리운 것은 무엇일 것 같은가"그간 친분을 쌓았던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 특히 오래 뛴 굼머스바흐 시절 함께 했던 지인들은 많이 기억이 날 것 같다. 많은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 역시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혹 그래서 1~2년 이후에 다시 독일로 나오게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은 든다"
<마이데일리 독일 함부르크 = 차상엽 특파원 sycha@my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