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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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볼을 던져 골을 넣는 경기가 있었음
1800년대
1897
최초로 핸드볼과 유사한 경기가 개최
1900년대
1906
스웨덴 핸드볼인 ‘노이러하프볼, 토아볼’이 발전
1917
독일 매스하이저, 여성을 위한 공식 핸드볼 규칙을 고안
1919
독일 칼 세렌츠, 남성을 위한 규칙 추가
1926
네덜란드 헤이그 총회, 필드 핸드볼 경기 규칙 제정 및 인준
192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제아마추어핸드볼연맹(IAHF) 창립
1933
필드핸드볼 올림픽 종목에 포함
1946
덴마크 코펜하겐, 국제핸드볼연맹(IHF) 출범
1946
코펜하겐 총회, 고스타 비요크 IHF 초대 회장
1951
비엔나 총회, 한스 바우만 IHF 2대 회장
1960
마지막 세계여자선수권대회로 11인제 야외 경기 종결
1972
코펜하겐 총회, 폴 호그버그 IHF 3대 회장
1972
독일 뮌헨 올림픽, 남자 핸드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
1976
쿠웨이트 세이크,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창립
1980
러시아 모스크바 올림픽, 여자 핸드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
1980
어윈 랑스, IHF 4대 회장
1982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정식 종목으로 선정
1990
중국 북경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정식 종목으로 선정
1991
독일 베를린, 유럽핸드볼연맹(EHF) 창립
2000년대
2000
포르투갈 에스토릴 총회, 하산 무스타파 IHF 5대 회장 ~ 현재
2017
터키 안탈리아 총회, 209개국 국제핸드볼연맹의 회원국 등록
핸드볼 경기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핸드볼은 전통적인 올림픽 경기인 레슬링, 복싱 등의 경기와 함께 고대 경기 중의 하나
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오디세이(Odyssey)에 있어
호머(Homer)는 핸드볼 경기자들을 극구 칭찬하는 내용이
있고, 아테네 근처의 디프리온(Diplyon)의 무덤에는 손으로 하는 멋진 볼 경기가 있는데, 이는 “볼을 가지고 하는 댄스와
유사한 활동이다”
라는 실 예도 있다. 또한
기원전 나일강 유역의 볼 경기는 전적으로 손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굴물
들은 핸드볼이 고대 경기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현대 핸드볼의 발전은 실내핸드볼(7인제)과 필드핸드볼(11인제)로 나누어져 이루어졌다.
2004년에 저자가 덴마크 톱지도
자 강습회에 초청 강사로 방문한 덴마크 뉘보그(Nyborg)에서 국제연맹 CCM에서 함께 일한 알란 룬드의 안내로 핸드볼 발생지를
방문한적이 있다. 당시 학교의 협소한 운동장 때문에 축구를 할 때면 학교 유리창이 많이 훼손되었고, 결국 학교장이 축구 금지령
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체육선생이 발이 아닌 손으로 하는 종목을 고안하였고 이것이 현재 핸드볼의 근원이
되었다.
필드 핸드볼(11인제)은 독일의 체육교사가 발전시켰는데 이것은 특히 여성에게 축구의 대안으로
유명해졌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1년 후 8개국의 대표가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만나 국제핸드볼연맹(IHF)을 출범시켰다. 설립된 날
짜는 1946년 7월 11일로 짐작되고 설립에 참가한 국가들은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스웨덴, 스위스
였다. IHF초대 회장인 고스타 비요크(스웨덴)는 같은 시기에 스웨덴 핸드볼연맹의 회장이었고 1950년까지 그의 직분을 유지하였
다. 비엔나에서 열린 제3회 IHF 총회에서는 한스 바우만(스위스)이 그의 후임자로 결정되었는데 그는 비요크 임기 동안 부회장까
지 역임하며 전세계적으로 통용될 경기 방법의 결정과 같은 문제를 다루었다.
총회에서는 독일권에서 유명한 필드 핸드볼(11인제)과 스칸디나비안이 선호하는 실내핸드볼(7인제) 중 한쪽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여러 실내 핸드볼 경기들이 쉽게 매진되는 것에 더불어 세계선수권 대회 야외 결승전도 50,000명의 관중이
참석 하는 등 50년대에는 두 종류의 핸드볼이 모두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7인제 경기가 점점 더 인정되었고 1960년에는 마지
막 11인제 야외 경기는 여자세계선수권대회로 막을 내렸다.
핸드볼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세계선수권대회 및 세계남여주니어선수권대회(1977년부터) 그리고 IHF컵(1982년부터/후에 EHF
컵) 등의 큰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1982년 인도 뉴델리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핸드볼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여자핸드볼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제14회 IHF 총회에서는 국제연맹을 스위스 바젤에 두고 사무국장을 선임하며 분과위원회를 창
립할 것 등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되기 시작하면서 1980년에는 미국과 몇몇 동맹국이 모스크바 올림픽게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였고
4년 후 LA올림픽에는 동구권의 국가들이 불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이때 올림픽 핸드볼 종목에 첫 출전하였고 은메
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91년에 베를린에서 유럽핸드볼연맹(EHF)이 창립되었으며, 이 연맹은 오늘날 비엔나에 본거지를 두고 대륙
선수권대 회와 유럽피안컵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IHF는 세계선수권대회를 1990년까지 4년마다 주최하였지만 1993년(남자: 스웨덴, 여
자: 노르웨이)부터는 2년 주기로 개최하기로 하였다.
2000년 포르투갈 에스토릴 IHF 총회에서는 하산 무스타파(Hassan Moustafa, Egypt, 1944~현재)박사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는
데 그는 국제 연맹에서 권력을 가지게 된 첫 번째 비유럽인이었다. 하산 무스타파의 임기 동안에도 몇 가지 중요한 변화들이 일어
났는데, 우선
올림픽에서 남자, 여자 경기(LA 올림픽 남:8, 여:6)출전국이 각각 12개국으로 늘어났고 이집트(엘구나, El
Gouna)에서 처음으로 공식 비치핸드볼대회가 개최되었다.
미디어의 관심, 특히 TV매체에 의한 관심이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좋은 조건의 TV계약들이 체결되어 세계인들이
함께 보고 즐기는 핸드볼이 발전되었다.
1988년 22회 IHF 총회에서 처음으로 국제연맹 회원수가 100개국을 초과하였으며 가장 최근
인 2017년 터키 안탈리아 총회 당시 209개 국가가 국제연맹의 회원국으로 등록되었다.
이렇듯 핸드볼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또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1900년대
1937
이병학 조연하 등, 일본에서 체육교육을 받고 온 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필드핸드볼(11인제) 지도
1945
이병학 초대회장, 조선송구협회 창립 및 초대회장 취임
1946
최초의 송구대회인 ‘제1회 남녀중학송구대회’ 개최
1957
대한핸드볼협회로 명칭 변경 (송구→핸드볼)
1960
벨기에 국제핸드볼연맹 총회, 26번째 회원국으로 연맹에 가입
1963
11인제 폐지, 7인제 핸드볼만 실시
1977
쿠웨이트, 제1회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 준우승
1978
체코, 제7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예선탈락
1981
김종하 회장,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취임
1982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 동메달
1984
제23회 LA올림픽, 여자부 은메달
1986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부 금메달
1988
제24회 서울올림픽, 여자부 금메달, 남자부 은메달
1992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부 금메달
1995
오스트리아&헝가리, 제12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우승
1996
제26회 애틀란타올림픽, 여자부 은메달
2000년대
2003
크로아티아, 제16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 3위
2004
그리스 아테네올림픽, 여자부 은메달
2008
SK그룹 최태원 회장, 대한핸드볼협회 회장 취임
2010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우승
2014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 청소년선수권대회 3위
2018
제18회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여자부 금메달&남자부 동메달
2021
일본 도쿄, 여자핸드볼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2022
북마케도니아, 제9회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핸드볼은 처음 우리나라 체육교과 내용에 편입될 때 수구(手球)로 지칭되었으며 그 뒤에는 송구(送球)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7년에 대한송구협회가 대한핸드볼협회로 바뀌면서 도입 이래 20년간 사용된 송구라는 용어가 핸드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핸드볼 경기 자체의 도입은 1936년 일본에서 체육교육을 받고 온 이병학, 조연하 등이 체육교사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필드핸드볼(11인제)을 지도한 것이 처음이었다.
1945년 10월 조선송구협회가 창설되었고 이듬해인 1946년 5월 29일에는 최초의 송구대회(11인제)인 제1회 남녀중학송구대회가 개최되었다.
1946년 제27회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송구가 처음으로 대회종목에 포함되었고, 그로 인해 이후 많은 학교에서 송구팀을 육성하였다.
1960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핸드볼연맹 총회에서 한국은 이집트와 함께 26번째 회원국으로 연맹에 가입하여
국제적인 입지를 마련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대한핸드볼협회는 1963년부터 11인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7인제 경기만을 실시하기로 방침
을 세웠다. 이로써 11인제는 역사의 장으로사라지고 7인제 시대가 새롭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한 저
자는 일본국가대표선수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신기술을 전수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핸드볼의 본고장인 유럽 핸드볼을 직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IHF 공인 연맹인 아시아핸드볼연맹은 1977년 제1회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를 회장국인 쿠웨이트에서 개최하였
고, 한국팀은 여기에 참가하여 12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결승전까지 올랐다. 그러나 한국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만나 완패하였고 준
우승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1978년 6월에는 여자 대표팀이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일본에 이겨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첫 출
전하였지만 3전 3패의 성적으로 결선 순위전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1981년에는 양정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핸드볼 선수로 활약한 김종하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때 협회는 아시아핸드볼연맹과 국제핸드볼연맹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한국 핸드볼의 국제적인 위상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덕분에 한국핸드볼은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김종하는 아시아핸드볼연맹 수석부회장과 국제핸드볼연맹 집행위원(1988-1996) 외
현재 아시아핸드볼연맹 기술위원장 겸 국제핸드볼연맹 기술위원(2012-현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핸드볼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이에 한국대표팀도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일본, 중국
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반면 198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남∙여 모두가 일본의 벽을 넘어 우승의 벽을 넘어 우승의 고지를
탈환하였다.
그 이후 구소련이 주도한 1984년 LA올림픽 집단 보이콧으로 인해 한국 남∙여 국가대표팀은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얻
게 되었고, 이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여 유럽권이 아닌 팀이 처음으로 메달권에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선수단이 우승을 거두며 아시아 핸드볼의 정상으로 우뚝 섰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
서는 여자부가 금메달, 남자부가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핸드볼 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 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평균나이 20.3세의 젊은 여자팀이 금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2연패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는 세계 여자핸드볼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여자핸드볼의 위상은 더 높아졌고 1995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공동 개최된 제12회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도 최
초로 우승하여 한국이 세계여자핸드볼의 최정상임을 확인시켜주었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는 여자팀이 결승 연장선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이후 유럽팀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
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남∙여 대표팀 모두가 메달 획득에 실패하였으며 2003년 일본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전에서 남자팀은 출전권을 확보하였으나 여자는 중국에 패하여 출전권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자팀은 2003년 12월 크로아티아 세계여자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여 재도약의 발판을 마
련하였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까지 진출하였다. 결승에서 덴마크와 만난 여자팀은 2회 연장전과 마지막 승부던지기까지
갔으나 은메달을 그 뒤에 이어진 2021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는 메달권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남자대표팀은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는 아시아의 정상을 지켰으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부터 카타르대표팀이 용병 선수들
을 대거 영입하는 바람에 왕좌를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여자팀은 2014년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와 세계여자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였다. 이어 2018년 자카르
타 아시안게임에서는 여자팀이 금메달, 남자팀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에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한국 핸드볼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한핸드볼협회장으로 취임하여,
핸드볼인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핸드볼 전용경기장을 잠실 올림픽공원 내에 건립하여 실용적인 교육과 훈련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있다. 그 밖에도 꿈나무 발굴 사업, 남∙여 실업 팀 창단과 교육대학교 남∙여 팀 창단, 핸드볼 발전재단 설립 등이 진
행되어 한국핸드볼 선수들과 지도자에게 다방면으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핸드볼이 재도약하여 새로운 좋은 역사가 만들어지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이 글은 <모두의 핸드볼>(정형균 저) 중 일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 입니다.